[파이낸셜뉴스]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한 내년 감액 예산안의 2일 국회 본회의 상정은 보류됐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전제로 오는 10일까지 본회의 상정을 막아서다. 하지만 내년 예산을 둘러싼 여야간 이견은 여전하다. 대립도 팽팽하다. 최악의 경우, 감액안 대로 야당 주도로 국회 통과 가능성도 있다. 정부 당혹감은 커지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야당 단독 감액안 관련 정부입장' 브리핑을 통해 "대외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 경제의 리스크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민생 예산을 포함, 미국 신정부 출범 등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할 예산이 한정되면서 경제정책 운용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
반도체 위기 대응…"골든타임 놓친다"
야당의 내년 감액 예산안의 핵심은 예비비 2조4000억원 삭감이다. 최 부총리는 이와관련 "글로벌 산업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된다"고 우려했다.
단독 감액 예산안은 혁신성장펀드와 원전산업성장펀드 등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부 예산안을 삭감하고, 출연연구기관과 기초연구·양자·반도체·바이오 등 미래 성장동력 연구개발(R&D)도 815억원이나 감액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최 부총리는 "예비비도 절반 수준인 2조4000억원으로 대폭 삭감했다"고 설명했다.
예비비는 긴급한 산업·통상 변화가 발생할 경우 적시 대응을 위해 쓰인다. 실제 지난 2019년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한소부장 기술개발 등의 소요가 발생해 한 해 동안 총 2조7000억원의 예비비를 사용한 바 있다.
예비비 삭감으로 정부가 최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에서 밝힌 반도체 산업 지원도 무효화될 가능성이 높다. 산경장에서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수적인 전력망 등 기반시설과 인공지능(AI) 컴퓨팅 인프라 확충을 위한 재정지원 방침을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전력망 지원은) 사업이 확정되지 않아 (일단 내년 예비비에서) 예산을 전용한 후, 내후년 예산부터 항목이 정해진다"며 "예비비가 삭감되면 전력망 기반시설 지원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여야와 정부가 잠정 합의했던 반도체·AI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와 소상공인 부담 경감, 내수 활성화 방안도 빠져있다"고 덧붙였다.
민생, 지역경제를 위한 정부 지원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최 부총리는 "청년도약계좌, 대학생 근로장학금, 청년 일경험, 저소득 아동 자산형성과 같은 사회이동성 개선을 위한 대표적 사업도 삭감했다"면서 "아이돌봄과 의료개혁 예산도 감액하고, 최근 3년간 1.5배 증가한 마약 범죄, 5배 증가한 딥페이크 범죄 등에 대해기밀을 유지하며 수사할 수 있는 경비도 100% 삭감해 범죄 대응에 큰 차질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내년 초 추경 불가피 전망 나와
민주당의 감액 예산은 정부 제출 예산규모인 677조원에서 4조1000억원 줄인 것이다. 야당 단독 감액예산안에는 예비비 2조4000억원, 대통령실과 검찰, 경찰, 감사원 등 기관 특정업무경비·특수활동비 전액 삭감 등이 담겼다.
예결위에서 여야 합의 없이 감액만 담긴 예산안이 통과된 것은 사상 처음이어서 기재부의 당혹감은 크다. 만약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대응 방안이 제한적이어서다.
예산안은 법률안이 아니다.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처리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헌법상 국회가 예산을 감액하는 것은 정부 동의 없이 가능하다.
현실적인 대응 방안은 부처 내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의 예산을 조정해 재배정하거나 예비비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예비비, 특활비 등이 삭감되면서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가 처한 수출 둔화, 내수부진이라는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도 임박해 있다. 불확실성이 산적해 있지만 재정이라는 대응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오는 10일까지 기한은 늦춰졌지만 여야 합의가 안될 경우,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추경도 현행 국가재정법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편성할 수 있어 한계가 있다.
최 부총리는 "야당은 단독 감액안을 처리한 후 정부가 추경을 편성해 보완해달라고 주장하나 증액할 사업이 있으면 여야가 합의해 본예산에 반영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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