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요양병원 입원 무연고자 H씨의 기막힌 사연
편의점 절도로 수배 중 뇌출혈로 길에서 쓰러져
부모형제 없고 결혼도 않아 가족 없이 노숙생활
병원서 뇌수술 입원 후 치매 겹쳐 강제수사 중단
편의점 절도로 수배 중 뇌출혈로 길에서 쓰러져
부모형제 없고 결혼도 않아 가족 없이 노숙생활
병원서 뇌수술 입원 후 치매 겹쳐 강제수사 중단
주말인 지난 14일 부산 부산진구 온요양병원(병원장 김동헌·전 부산대병원 병원장) 입원병동. 병원 행정실장 권진영씨가 병상에 누워서 눈만 끔벅끔벅하는, H씨(66)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H씨는 겨우 입을 달막거리면서 응, 예, 하고 단답형으로만 행정실장에게 반응했지만, 그는 옅은 미소로 감사함을 표시하는 듯했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식품을 훔친 죄로 경찰 수배 중 거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수술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노숙인이 진료비 본인부담금상환제라는 의료복지제도의 혜택으로 형사처벌에서 벗어나 요양병원에서 요양 중이라는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노숙을 전전하던 H씨는 지난해 10월 한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한 달여 도망 다니던 그는 11월 하순 길거리에서 쓰러졌다. 무연고자인 그는 부산의료원에 후송돼 경막하 출혈로 진단받고 인근 온종합병원 뇌혈관센터에서 응급수술로 목숨을 건졌다.
온종합병원에서 20여 일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뇌출혈 후유장애가 남은 H씨는 마땅히 돌아갈 집이 없어, 지난해 12월 온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온요양병원은 H씨가 무연고자여서 월 40만원에 달하는 간병비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검찰로부터 “H씨가 현재 별도의 수용시설에서 생활이 가능한지” 물어왔다. “뇌출혈 후유장애로 거동을 전혀 할 수 없고, 혈관성 치매 등으로 의사표현조차 힘겨운 중증상황”이라는 병원 측의 설명으로, 그는 수감 위기에서 벗어났다.
H씨의 입원이 장기화되면서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 많이 생겼다. 입원 초기부터 H씨를 상담해온 이 병원 이채영 사회복지사가 그의 후견인을 자청했다. 후견인으로 지정되는 과정에 H씨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이 알려졌다.
H씨는 열 살 무렵 시골 고향의 개울에서 다이너마이트로 물고기를 잡다가 잘못 터지는 바람에 왼쪽 눈을 실명하고 손가락 3개가 절단됐다. 부모형제도 없고, 결혼한 적이 없는 혈혈단신으로, 빵이나 플라스틱제조공장 등을 전전하며 부산역 등에서 노숙했다. 온요양병원 입원 이후 H씨를 담당해오던 부산진구 당감2동 주민자치센터에 후견인으로 등록한 이 복지사는 이달 초 관할 주민자치센터로부터 후견인으로 H씨의 ‘진료비 본인부담금환급금’을 신청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본인부담상한액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일정 기간 동안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부담해야 할 최소한의 금액으로, 이 상환액이 초과되면 이후의 의료비는 전액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다. 본인부담상한액은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로, 특히 만성질환자나 고액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의료복지 제도이다.
H씨는 온요양병원 측과 이 복지사의 도움으로 지난 4일 본인부담금 상환금 신청서를 제출했고, 11일 건보공단으로부터 4년 치 환급금을 받았다. 이 복지사는 미납 간병비를 공제하고, 수배사건과 관련된 벌금까지 지급함으로써 ‘노숙인 장발장’ H씨를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게 도와줬다.
온요양병원 이 복지사는 “H씨처럼 무연고자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는 흔하다”고 설명하면서도, “일반 가정에서도 경제적 부담이 되는 간병비 등을 고려하면 이들의 입원을 선뜻 받아들일 요양병원이 흔치 않은데, 늘 사회공헌을 앞세우는 온병원의 뜻을 받들어 적극 수용해 돌보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그는 또 “H씨의 일처리도 무연고 환자들과 상담하는 과정에 최대한 현행 복지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라는 병원 지침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온요양병원 권진영 행정실장은 “H씨는 입원 당시 오래 노숙생활을 한 탓에 연고자는 물론 주민등록증조차 없었다”며 “병원이 H씨의 가족이 돼줘야겠다는 생각에 담당 사회복지사를 통해 주민증도 새로 발급받아 의료급여 혜택을 볼 수 있게 했고, 뜻하지 않는 본인부담금상환제도 덕분에 밀린 간병비는 물론 벌금형까지 갚음으로써 ‘자유의 몸’이 됐다”고 우리나라 의료복지 제도의 우수성에 흐뭇해했다.
paksunbi@fnnews.com 박재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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