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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24일 개봉
[파이낸셜뉴스] “우리가 다 아는 안중근 장군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모인 독립군의 여정을 숭고하게 담고 싶었다.”
우민호 감독이 18일 용산 CGV에서 열린 ‘하얼빈’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CJ ENM이 투자 배급하는 ‘하얼빈’은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그리고 이동욱이 출연한 300억원대 블록버스터 영화다.
영화적, 시대적으로 연말 추천 영화
1908년 안중근(1879-1910)은 의병부대를 조직해 함경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나, 그때 잡은 일본군 포로를 당시 국제법에 따라 풀어준 게 화근이 된다.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부대원을 잃은 그는 간신히 살아남아 러시아 연해주로 돌아오고, 1909년 왼쪽 약지를 잘라 단지동맹을 맺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의한다.
‘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나라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독립군과 이를 쫓는 일본군 사이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 실제 독립군들이 활동한 중국, 만주와 지형이 닮은 몽골, 구소련의 건축 양식이 남아있는 라트비아 등에서 촬영했다.
이 영화는 OTT 시대, 극장용 영화의 차별성을 유려한 미장센으로 차별화한다. 이와 함께 탄핵 정국,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군들의 희생이 그 어느 때보다 의미있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연말 극장에서 꼭 보면 좋을 영화로 꼽힐만하다.
"독립군 이야기 숭고하게 찍고 싶었다"
‘하얼빈’은 영하 40도의 강추위에 얼어붙은 강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안중근의 모습을 부감으로 잡아내며 시작한다. 꽝꽝 얼어있지만 금이 쩍쩍 가있어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시푸른 강을 힘겹게 한걸음씩 내딛는 안중근의 모습은 마치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조국의 불투명한 미래와 자신의 판단으로 동료를 잃은 죄책감, 두려움에 맞서 독립 의지를 다지는 안중근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시선을 압도한다.
이어 안중근의 책임론을 두고 동지들이 밀실에서 회의를 하는 장면은 마치 자연주의 화가 밀레가 그린 명화처럼 빛과 어둠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눈이 쌓인 겨울 산에서 일본군과 독립군이 펼치는 전투는 그야말로 처절하기 그지없어 당시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군들의 희생을 가슴 뼈아프게 환기시킨다. 달리는 기차에서 펼쳐지는 첩보전과 액션신은 마치 고전영화를 보는 듯, 우아하고 고풍스럽다.
안중근이 동료들과 함께 하얼빈 거사를 치르기 며칠 전부터 한걸음 한걸음씩 내딛는 여정은 때로는 겨울나무처럼 쓸쓸하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처럼 장대하다가도 어느 새 일본군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이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긴박하게 펼쳐진다.
우감독은 “독립군들의 이야기들을 블루매트 앞에서 찍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몸이 힘들더라도 대자연을 찾아다녔고 그 여정을 스펙터클하면서도 숭고하게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영화를 3년 전에 기획했다. 제작진들과 OTT와의 차별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찍었다. 아주 클래식하게 찍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독립군들의)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부연했다.
“몽골에는 산이 없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서 있자니 인간이 한없이 작은 존재처럼 느껴지더라. 신기하게도 정신은 오히려 맑아졌다. 대륙을 떠돌던 안중근 장군과 독립군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때문에 당시 일본 제국주의와 상대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거사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감탄 자아내는 화면과 몰입감 넘치는 음악, 배우들 호연 조화
‘기생충’ ‘설국열차’ ‘곡성’의 홍경표 촬영감독은 매 장면 감탄을 자아내는 미장센으로 이들의 여정을 스펙터클하게 펼쳐 보인다. 여기에 '헤어질 결심' '아가씨'를 작업한 조영욱 음악감독의 음악이 배우들의 호연과 어우러져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이 음악은 비틀즈도 작업했던 영국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제작사를 통해 “1910년대에 만주, 블라디보스토크 쪽에서 활동했던 독립군들이 실제로 이렇게 다녔다고 생각하면 그 공기들이 쓸쓸하기도, 외롭기도 했다. 독립군들에게 공감가는 순간들이었다”고 전했다.
우감독은 이날 "영화를 보다가 몇 번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현빈을 안중근 의사로 캐스팅한 이유로 “현빈의 눈빛에 쓸쓸함이 있다. 연약함과 강함도 있다. 장군이 느낀 고뇌와 두려움, 쓸쓸함을 담아낼 수 있다고 봤다”고 답했다.
고충도 토로했다. 그는 “중간에 너무 힘들어 그만둘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내의 권유로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고 용기를 얻었다. 우리 한민족의 모진 생명력을 봤다”고 말했다.
건조한 연출과 어두운 분위기로 오락적 재미는 덜할 수 있다. 안중근을 영웅시해 어떤 통쾌함이나 감동을 주기보다 안중근의 인간적 고뇌와 결의 등에 집중한다. 이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는 쓸쓸함과 애잔함에 가깝다.
밀정의 존재를 알아챈 순간 안중근의 눈에 맺힌 눈물에선 분노보다 안타까움이 더 느껴지고, 일본군이 접시에 던져준 고기 한 덩어리를 주워 먹으며 일본의 개가 되기로 결정한 한 독립군의 모습은 굴욕적이면서도 서글프다.
탄핵 정국, "위로와 힘이 되는 영화 됐으면"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 그의 나이 30세였다.
우감독은 “이전에는 한국현대사를 비판하는 작품을 만들면서 악인을 다루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그리게 됐다. 당시 독립군 대다수가 20-30대였더라. 그들의 헌신이 무척 고맙고 죄송스러웠다”고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특히 ‘탄핵 정국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독립군의 여정을 다룬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느냐’는 물음에 우감독은 “관객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면 좋겠다. 혼란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지만,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자긍심을 느끼길 바란다“고 답했다.
독립군 역할의 조우진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의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연말이니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동지와 같은, 간절한 기도와 같은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답했다.
현빈은 “안중근 장군과 함께한 동지들은 역경이 와도 신념을 갖고 한발 한발 나아갔다. 그렇게 결국엔 좋은 결과를 만들었듯이, 지금 또한 힘을 모아 한발 한발 내딛으면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답했다.
유재명은 “오늘 영화를 보면서 마치 내가 100년 전 그때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울분과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의 나와 그때의 그들이 연결돼 있듯 지금의 우리가 다음 세대와도 연결돼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느꼈다. 이 영화가 (현재) 우리의 숙제를 돌이켜보는 그런 의미가 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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