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서에는 다양한 처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처방의 종류는 무척 많고 병증마다 다르고 변증(辨證)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백인백방(百人百方)’이라는 말까지도 있다. 환자가 백명이면 처방도 백개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경험이 부족한 의원들은 처방을 하는데 어려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평소 처방에 어려움을 느끼던 한 의원이 당대의 명의들은 도대체 어떤 처방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명의들의 약방문을 알아보고자 전국을 유람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라북도에 명의가 많았다. 그래서 의원은 먼저 전라북도를 찾았다. 전북 태인에는 김창호(金昌浩)라는 명의가 있었다. 김창호선생의 약방에는 환자들이 무척 많았다.
의원은 약방에서 처방을 받아서 약포지를 새끼줄로 묶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을 붙들고 “혹시 약 내용을 한번 볼 수 있겠소?”라고 부탁을 했다.
환자들은 의아해하면서 “머할라고 그란디 남의 약포지를 풀어 본다요?”라고 물었다.
의원은 자신도 의원인데 명의는 어떤 처방을 하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먼 곳에 왔다고 하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어떤 환자들은 붓글씨로 적힌 약방문만을 받아서 나오기도 했다. 처방을 받아 나오는 환자들의 약재를 보니 공통으로 들어간 것들이 있었다. 바로 숙지황, 당귀, 천궁, 작약이었다. 이 재료들은 바로 보혈제로 사용되는 사물탕(四物湯)이란 처방이다.
의원은 ‘아니 사물탕 하나만으로 이렇게 명의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인가?’하고 놀랐다.
그런데 며칠 동안 살펴보니 김창호 선생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따라서 다른 약재들이 추가된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몸이 뜨거운 혈열(血熱)한 환자에게는 사물탕에 단삼, 목단피, 익모초가 가미되었고, 다리에 통증이 있는 환자에게는 우슬, 지모, 황백이 가미되었고, 몸이 차가운 혈한(血寒)한 환자에게는 육계, 우슬이 가미된 것이다. 그러나 역시 모두 사물탕이 기본방이었다.
의원은 ‘명의라고 해서 대단한 처방을 하는 줄 알았건만, 처방이 이처럼 단순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의아해했다.
사람들은 전북 태인의 김창호 명의를 사물탕(四物湯)을 잘 처방한다고 해서 김사물(金四物)이라고 불렀다.
사실 의원이 경험이 많을수록 사용하는 처방 개수가 적고 처방도 단순해진다. 처방의 개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한가지 처방으로도 많은 병증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다만, 기본처방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가감(加減)을 잘한다. 가감은 마치 무딘 칼을 예리하게 가는 것과 같다. 나무를 벨지, 가죽이나 고깃덩이를 자를지, 종이나 비단을 재단할 지에 따라서 꼭 필요한 만큼만 가감하는 것이다. 이러한 처방을 소위 명방(名方)이라고 하다.
반대로 경험이 부족한 용렬한 의원의 처방은 복잡하고 약재 가짓수만 늘어날 뿐 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처방이 되었는지 알기도 어렵다. 환자의 병증에 대해 제대로 된 변증이 안되기 때문에 어떤 처방을 할지 혹은 어떻게 가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처방을 합방하고도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마다 도움이 될만한 약재를 마구잡이로 섞기 때문이다. 이러한 처방을 소위 잡방(雜方)이라고 한다.
전북 전주에도 최치문(崔致文)이라는 명의가 있었다. 의원이 최치문 선생의 약방을 찾아가서 보니 주로 오적산(五積散)을 처방했다. 오적산은 혈적(血積), 기적(氣積), 담적(痰積), 냉적(冷積), 식적(食積) 등 오적(五積)을 치료하기 때문에 관련 증상의 범위가 매우 광범위한 명방이다. 혈액순환 장애, 비만, 체기, 냉증, 만성적인 요통, 좌골신경통, 저림 등 다양한 병증을 치료한다.
최치문 선생도 역시 환자의 증상에 따라서 오적산을 기본방으로 처방하면서 적절한 약재들을 가미를 했다. 사람들은 최치문 선생을 오적산을 잘 처방한다고 해서 최오적(催五積)이라고 불렀다.
전북 운봉에도 명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봤다. 바로 허창수(許昌洙) 선생이었다. 허창수 선생의 처방을 보니 기본방이 바로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이었다. 육미지황탕은 신수부족(腎水不足)을 치료하는 명방으로 음허증(陰虛症)에 주로 사용된다. 요즘으로 치면 비뇨생식기 질환이나 호르몬 관련 질환 병증이다. 사람들은 허창수 선생을 육미지황탕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허육미(許六味)라고 불렀다.
전북 남원에는 김광익(金光益)이라는 명의가 있었다. 김광익 선생의 처방을 보니 바로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이 기본방이었다. 보중익기탕은 중기부족과 폐기가 약해서 나타나는 피로와 식욕부진, 식은땀을 치료하는 명방이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에 잘 걸리는 경우에도 효과가 좋다.
환자에 따라서 가감이 달랐지만 모든 병에 기본적으로 보중익기탕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김광익 선생을 보중익기탕을 많이 처방한다고 해서 김보익(金補益)이라고 불렀다.
의원은 함경남도에도 명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북으로 향했다. 바로 함경남도 원산의 정봉조(鄭鳳祚) 선생이었다. 정봉조 선생의 처방을 보니 어느 처방에는 창출, 후박, 진피, 감초가 주로 들어가 있었고, 어느 처방에는 반하, 진피, 복령, 감초가 기본으로 들어가 있었다. 앞의 처방은 평위산(平胃散)이었고, 뒤의 처방은 바로 이진탕(二陳湯)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위산은 비위를 튼튼하게 하면서 제반 위장장애를 치료하는 처방이고, 이진탕은 담음(痰飮)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담음은 제반 비정상적인 노폐물로 위장장애나 근육과 관절 등에 각종 기능장애나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정봉조 선생은 평위산과 이진탕을 기본방으로 해서 환자의 증상에 따라서 약재들이 가미되어 처방되었다. 사람들은 정봉조 선생을 평위산(平胃散)과 이진탕(二陳湯)을 주로 처방한다고 해서 정평진(鄭平陳)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전국에는 사물탕을 잘 활용하는 김사물(金四勿), 오적산을 잘 활용하는 최오적(催五積), 평위산과 이진탕을 잘 활용하는 정평진(鄭平陳), 육미지황탕을 잘 활용하는 허육미(許六味), 보중익기탕을 잘 활용하는 김보익(金補益)이라 불리는 명의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진료를 오래하다 보면 비슷한 병증의 환자들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만의 의안(醫眼)이 있다면 한가지 처방으로도 백가지 병을 치료할 수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의안이 없다면 백가지 처방으로도 한가지 병도 치료하지 못할 것이다.
알고 보니 명의의 처방이라고 해서 금궤(金櫃)에 숨겨놓은 비방(祕方)이 아니었다. 명의들은 의약(醫藥)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아는 흔한 처방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명의는 다만 단순한 처방이라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았다. 명의의 비방은 바로 곁에 있었던 것이다.
* 제목의 ○○○은 ‘김사물(金四物)’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출처
<논증실험의결> 論症處方學編. ○ 金四物活用方, 全北 泰仁, 故金昌浩先生方文. ○崔五積活用方, 全州府 大正町 六丁目, 故崔致文先生方文. ○ 鄭平陳活用方, 元山府 大和程 保元局, 鄭鳳祚先生方文. ○ 許六味活用方, 全北 雲峯, 故許昌洙先生方文. ○ 金補益活用方, 全北 南原郡 德果面 蓮洞, 故金光益先生方文. (논증처방학편. ○ 김사물활용방, 전북 태인 고 김창호 선생방문. ○ 최오적활용방, 전부주 대정정 6정목, 고 최치문선생 방문. ○ 정평진활용방, 원산부 대화정 보원국, 정봉조선생 방문. ○ 허육미활용방, 전북 운봉, 고 허창수선생 방문. ○ 김보익활용방, 전문 남원군 덕과면 연동, 고 김광익선생 방문.)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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