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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공사의 결정판…33명의 목숨을 앗아간 새벽의 굉음 [역사&오늘]

뉴스1

입력 2025.04.08 05:01

수정 2025.04.08 05:01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당시 모습. (소방청 제공)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당시 모습. (소방청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의 와우아파트 단지에서 15동 5층 건물이 굉음과 함께 폭삭 무너져내렸다. 준공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발생한 이 사고는 새벽의 고요를 깨고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에 강력한 경종을 울렸다.

와우아파트는 급증하는 도시 인구와 무허가 건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가 야심 차게 건설을 추진했던 시민아파트로, 1969년 말 완공됐다. 총 16개 동 462세대로 이루어진 단지였다.

사고 당일, 잠자던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건물의 붕괴에 속수무책으로 매몰됐다.

처참한 현장에 남은 부실한 콘크리트 잔해와 뒤틀린 철근이 당시의 충격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 사고로 인해 33명이 숨지고 38명이 부상을 입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사고 조사 결과, 이는 총체적인 날림·부실공사와 부정부패의 합작품과 같은 예견된 참사였음이 드러났다. 급경사진 지형에 대한 제대로 된 지반 조사와 보강 없이 옹벽 기초가 부실하게 시공됐다. 건물 하중을 견뎌야 할 기둥에는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철근이 사용됐고, 콘크리트 배합 역시 부실했다. 심지어 비용 절감을 위해 무면허 업자에게 하도급을 맡긴 경우까지 있었다.

특히 전시 행정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단기간 내 완공을 강행한 것이 부실 시공을 키웠다. 붕괴 위험에 대한 주민들의 지속적인 민원과 경고를 관계 당국은 철저히 무시했고, 결국 끔찍한 참사에 이르렀다.

부실한 공사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또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건축법을 강화하고 부실공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건설 행정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에 나섰다. 또한, 안전 의식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강조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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