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공주 덕에 돈쭐 맞았다"…'자영업 구조지도' 팔 걷어붙인 딸들

뉴스1

입력 2025.04.08 06:02

수정 2025.04.08 09:49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X(구 트위터) 갈무리
X(구 트위터) 갈무리


X(구 트위터 갈무리)
X(구 트위터 갈무리)


"만우절의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 김예지 씨(가명·29·여)가 지난달 31일 X(옛 트위터)에 부모님이 운영하는 천연 화장품 업체 '리즈코코'를 홍보하는 글을 올린 건 절박한 마음에서였다. 아버지가 퇴직 후 야심 차게 시작해 재구매율이 높고 단골손님도 꽤 생긴 사업이었지만, 코로나19와 최근 탄핵 정국을 거쳐 심해진 경기 불황을 피할 순 없었다.

홍보 글을 올린 다음 날인 만우절(4월 1일)부터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하루에 한 자리 수를 기록하던 주문 건수가 3일만에 3000건을 넘겼다.

예지 씨의 아버지인 김의원 씨(62)는 주문 폭주로 택배 송장 기계가 쉼 없이 작동되는 영상을 딸에게 보내며 "사랑해 우리 공주"란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어무니 가게 도와주세요"에 몰린 발길…"3일만에 주문 3000건, 감사합니다"

8일 X에선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의 가게를 홍보하는 딸들의 글들이 이어지면서 이같은 가게들을 모아 정리한 일명 '자영업자 구조 지도'가 만들어졌다. '트위터에서 보고 왔어요'란 제목의 지도엔 1000개의 음식점과 네일샵·화장품 가게·동물병원·꽃집·미용실이 등록된 상태다.

한 여성이 지난달 23일 수원시 팔달구 생선구이 전문점 주소와 함께 "저희 어무니 가게예요. 도와주세요"라고 적은 글이 이같은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네티즌들은 이 게시물을 인용하며 각자 부모님의 식당·카페·사업 등을 홍보하는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첫 글은 8일 오전 기준 1만 6890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2만 8000번 재게시되고 1만 3000번 인용(공유)됐다. 최근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수원 생선구이집을 찾아 부모님 가게 살리기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아버지가 예전에 사주 봤을 때 '딸이 보석일 것'이라는 소리를 들으셨는데, 이번에 '진짜 그렇다'고 하셨어요.
'부모님 가게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실제로 매출이 오른 업장들이 나타났다. 김의원 씨의 천연 화장품 업체도 딸 예지 씨가 글을 올린 후 12시간 만인 지난 1일 오전 9시 40분 신규 주문 건수가 293건 늘었다. 기존에 제품을 구매하던 단골들도 '정말 잘 쓰고 있다'며 홍보에 힘을 보탰다.

예지 씨는 "글을 올리고 나서 아버지가 몇 시간 사이 얼마나 주문이 더 들어왔는지 말씀해 주셨는데 새벽엔 신규 주문이 70건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오전 9시엔 170건, 9시 30분엔 293건으로 계속 주문이 늘었다"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모님과 새언니가 새벽 3시 30분까지 포장 작업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예지 씨는 만우절의 기적 같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제가 크게 성공해서 효도하고 싶은데 현실은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딸처럼 상경한 이후엔 본가에 자주 가지도 못하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해 짜증도 많이 냈었는데 이런 기회가 생겨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인 김 씨도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만나서 악수를 할 수 없어도 격려와 응원이 다시 여러분께 전달되기를 소망한다"며 감사를 표했다.

부모님 가게 홍보 이어져…'벼랑 끝 자영업자' 정부 대책 시급

어머니가 서울 용산구에서 우동집을 운영하는 박정연 씨(가명·21·여)도 최근 "딸, 고마워"란 문자를 받고 눈물을 훔쳤다. 박 씨는 지난 2일 X에 "혼자 무거운 육수 통 나르시고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주무시는 어머니께 딸이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 작은 홍보라도 해본다"며 글을 올렸다.

고물가 시대에 우동 한 그릇 6000원을 유지하려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시며 인건비를 절감하는 어머니가 생각나 쓴 글이었다. 박 씨가 홍보 글을 쓴 후 가게엔 주문하면서 편지를 전달하고 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편지엔 "따님 글 보고 방문했다"며 "늘 행복하시길 기원한다"는 말들이 적혔다.

홍보 글을 올린 후 하루 매출은 20만~30만 원 증가했다. 박 씨는 "어머니께선 서비스로 유부초밥이라도 주고 싶었는데 계산하시면서 말씀들을 해주셔서 서비스 못 드린게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다"며 "하루에 편지를 세 장이나 받으시면서 알바생 분과 어머니가 감동적이라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따님 글 보고 방문했어요.
익명 이용자가 대다수인 X에서 신상 노출을 감안하고서 부모님의 업장을 공개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윤 대통령 계엄·탄핵 정국 속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렸단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 지급 건수는 올해 1월 1만 2633건, 2월 1만 477건을 기록했다. 2월에도 폐업 공제금 지급이 1만 건이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제금 지급 액수는 1월 1959억 원, 2월 1434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자영업이 어려운 부모님을 도와달라고 하는 자녀들만의 이야기로 끝나선 안 된다"며 "민생이 어려워지면서 이런 선한 참여도 이뤄지는 것인데, 정부도 자영업자들을 혼자 놔두지 말고 같이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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