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회계,국경이 사라진다] <1> 자본시장의 FTA ④ 투자 패러다임이 바뀐다

김재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1.12 18:18

수정 2014.11.04 19:58



#1. 투자자 김씨는 상장사 A사의 재무구조가 견실하다고 판단, 거금 1억원을 투자했다. 김씨가 투자할 당시 A사는 자기자본 1000억원에 부채총액은 1500억원, 총자산은 2500억원이었다. 부채비율은 150%에 불과하고 자기자본비율은 40%에 달했다.

하지만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400%로 치솟았고 자기자본비율은 20%로 떨어졌다. 당연히 재무구조 부실화 우려로 이 회사 주가는 추락, 원금의 절반을 날리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답은 상환우선주에 있다.
현행 회계기준에 따르면 특정시점이나 보유자의 선택에 의해 현금상환되는 상환우선주는 일부 부채의 성격을 지고 있지만 현재는 무조건 자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IFRS가 도입되면 상환우선주의 경제적 성격에 따라 부채로 분류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김씨가 뒤늦게 알고 보니 A사의 자본 중 500억원이 상환우선주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회사는 IFRS 도입 후 자기자본은 500억원으로 줄고 부채는 2500억원으로 늘었다. 결과, A사는 부채비율 400%, 자기자본비율 20%의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제회계기준(IFRS)이 오는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되면 기업들의 자산가치와 영업손익 등도 획기적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러한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해 아직 그 파급효과를 짐작치 못하고 있다.

기업 가치가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주가를 평가하고 산출할 때 쓰이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회사가 1조원짜리였다가 숨어있는 자회사의 실질 가치와 영업력까지 평가해서 기업 가치에 반영하게 된다면 기업가치가 2조원까지 증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 회사의 현재 주가는 지극히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면서 다시 한번 더 오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반대로 지금까지의 기준으로 보면 1조원짜리 회사였지만 해외 자회사나 부실자회사의 가치를 포함하면 가치가 제로(0)인 회사도 나올수 있다.

■기업가치 재측정…주가도 변환

지금은 주식투자자들이 상장사의 실적을 검토할 때 국내 본사의 실적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글로벌 기업이라도 국내 본사의 실적만을 따진다.

하지만 IFRS가 도입되면 국내실적은 별 의미가 없다. 세계 각국의 현지법인과 이들 기업이 투자한 모든 자회사의 실적을 더한 연결재무제표가 기본 회계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하고 투자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하는 이유다.

또 주가를 판단하는 기준인 밸류에이션도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 기업을 청산한다고 할 때 기업의 자산을 모두 매각해서 현금화할 때 나오는 자금과 시가총액의 비율을 말하는 게 주당순자산비율(PBR)이다. 기업의 실적으로 주가를 판단하기도 한다. 주당순이익비율(PER)이 그렇다.

IFRS가 도입되면 공시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전달되는 사업보고서나 감사보고서의 내용이 모두 바뀌게 된다. 보고서의 수치를 기준으로 산출되는 기업의 자산가치나 실적도 모두 바뀌게 된다. 실적과 자산의 변동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PER이나 PBR 등으로 주식을 매매했던 기관들의 포트폴리오도 변하게 된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부장은 “주가에 대한 밸류에이션이 변하면 실질적으로 기관의 자금도 그에 맞게 조절이 된다”며 “외국 기관의 자금도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PER와 PBR 등이 주를 이루고 있어 외국 자금도 이에 따른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브랜드가치 포함, 주가 요동

예컨대 국제회계기준은 기업의 자산 가치에 브랜드 가치를 평가해서 넣을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7월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그룹 인터브랜드가 산출한 브랜드 가치는 169억달러(한화 15조3790억원)에 달한다. 브랜드 가치를 사업보고서에 반영할 경우 삼성전자 주가의 PBR는 현저하게 낮아져 주가는 더욱 오를 가능성이 크다.

또 자회사 및 특별목적회사(SPC)나 사모펀드(PEF) 등을 거느리고 있는 기업의 경우 지금껏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지게 된다. 기업의 일부로 인정돼 이들의 가치도 재무제표상에 반영된다.

지금까지 한국의 회계기준은 미국식 방식을 따르고 있었는데 미국의 엔론사태의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면서 국제회계기준의 전 세계 확산이 이뤄지고 있다. 엔론은 당시 지분율이 30% 미만의 회사에 손실을 넘겼지만 이는 이제 불가능해진다.

■자회사 평가기준도 변경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실질 지배력이 있는 모든 회사가 연결대상회사에 포함되고 SPC나 PEF도 연결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모회사의 재무상태 및 영업결과는 크게 변동된다. 물론 주가 변동도 불가피하다.

이 밖에도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면 현금 흐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업의 현금 흐름에 대한 정보를 투자자에게 제공하고 그동안 원가법만 인정하던 기업의 유형자산 측정법도 공정가치에 의한 재평가를 선택 가능하게 해놓음으로써 기업의 실질 가치에 대한 정보를 보다 상세히 투자자에게 노출하게끔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먼저 시스템 준비 단계가 필요

다만 이 과정에서 준비해야 할 일들은 있다. 업계에서는 유형자산의 잔존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 구축해야 한다.

현재 일시 퇴직 가정하에 작성되고 있는 기업의 퇴직급여충당금은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면 미래 퇴직금을 현재 가치로 계상, 부채로 잡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퇴직급여 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이 미래 퇴직금을 계산하는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투자자들도 새로운 재무제표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당장 새로운 회계기준에 따라 작성된 재무제표는 2년 뒤부터 공시를 통해 쏟아진다.
특히 재무제표에 대한 별도 형식이 없어지면서 기업간 비교 분석하기가 어려워지고 특별손익이 발생했을 때 기업이 공시할 의무도 사라지면서 이와 관련한 정보도 입수하기 어려워진다.

/seilee@fnnews.com 이세경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