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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前 한은총재에게 ‘경제해법’ 듣는다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1.04 16:00

수정 2009.01.04 12:59

■대담=박형준 편집국장

박승 한국은행 전 총재는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안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서민들의 실질소득은 확실히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성장과 서민들의 어려움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완화나 상속세, 법인세 완화 등 부유층에 대한 감세정책은 다시한번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유층은 감세해 줘도 소비성향이 낮기 때문에 경기부양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박 전 총재는 위기 대응책으로 향후 2년 동안 적자 재정을 감수하고라도 민생우선 중심의 공공투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중산층과 실업계층의 문제가 심각해지면 실업대란이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회안전망 강화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지난 2006년 4월 한국은행 총재를 끝으로 한국의 금융정책 일선에서 물러난 박승 전 총재를 만나 현 경제위기의 원인과 해법, 정부의 대응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올해 성장률이 2∼3%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우리 경제가 저성장구도로 진입하는 것인가.

▲올해 성장률에 대한 전망은 마이너스에서부터 3%내외까지 다양하다. 올해 마이너스가 안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서민들의 실질소득은 확실히 마이너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이 올해보다는 좀 나아지겠지만 저성장은 물론 서민들의 어려움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이유는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호황을 제공한 것도 중국이고, 경기침체를 제공한 곳도 중국이다. 중국 경제는 우리나라의 1990년대처럼 고비용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여진다. 20여년동안 지속돼 온 연평균 10% 성장에서 6∼7%로 줄어드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결국 이에 따른 부작용이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경제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미치게 될 것이다.

특히 대중국 수출로 입었던 수혜 제품들을 이제는 수입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한국경제에 상당기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투자기피 현상’과 ‘고용없는 성장구도’라는 우리경제의 2가지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과거와 같은 호황시대로 가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박 전 총재께서 생각하시는 민생우선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제가 지금 껏 주장해 온 민생우선 정책은 세가지다. 첫번째는 주로 부유층에 혜택이 가는 감세정책은 유보하는 것이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상속세와 법인세 등을 완화해 주는 제도는 결국 부유층의 세금을 낮춰주는 방안이다. 부유층들은 아무리 감세해 줘도 소비성향이 낮기 때문에 경기부양 효과가 적다.

두번째는 앞으로 2년동안은 적자재정을 감수하고 민생우선 중심의 공공투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공공투자를 늘리게 되면 결국 민생을 해결하고 자연스럽게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세번째는 생활보호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다. 민생중심의 정책을 추진해도 생활보호계층이 양산될 것이다. 특히 중산층과 실업계층의 문제가 심각해 지면서 실업대란이 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 정부는 사실상 종부세를 모두 풀고 부동산시장에 대한 규제도 대폭 해제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지금 부동산시장이 침체되고 건설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느 정도의 부동산 규제완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면 건설 규제를 강화하고, 건설경기가 침체되면 다시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투기를 유발시키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이번에도 그런 악순환의 되풀이라고 생각한다.

강남 3구 투기지역을 해제하면 부동산 규제의 모든 빗장을 다 푸는 것이다. 건설경기의 침체는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정부가 이번에 종부세를 완화한 대신 부동산에 대한 보유과세를 강화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부동산에 대한 보유과세를 대폭 올려야 한다. 특히 집값 상승, 부동산의 투기화, 개인저축의 낭비, 산업자본화의 차단, 부동산 가격상승으로 인한 후세들의 빈곤화, 부유층의 부동산 독점화로 인한 사회계층간의 갈등 등 모든 문제는 부동산 보유과세가 너무 낮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외환위기가 한 고비를 넘겼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본격적인 위기는 내년 1∼2월에 올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외환위기가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지금 현재 금융위기의 핵심은 외환부족이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은 좋다고 하는데, 왜 환율이 불안하고 금융위기가 오느냐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외신들도 한국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 더 위험하다고도 한다.

그게 바로 우리나라 금융위기의 본질적인 문제다. 즉, 외국과의 관계에서 한국 금융시스템이 대외적으로 대단히 취약하다고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금융위기를 벗어나려면 1000억 달러를 추가로 쏟아부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금융위기가 1년 이상 갈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미국을 비롯해 중국 및 일본과 총 9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체결된 점이 외환부족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그동안 정부의 모든 정책의 힘을 합친 결과물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때문에 외환수급 시장이 풀리기 시작했고, 빠르면 올 상반기 중에는 외환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번 금융위기는 금융시스템의 부실이 한가지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

▲2가지 의미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첫번째는 한국 금융시장에 있어서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상품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주식의 경우 외국인 비중이 43%까지 올라간 때도 있었다.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20% 수준이다. 이번과 같은 금융위기로 외국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외화유동성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감이 늘 상존해 있었다.

두번째는 한국은 금융기관들의 대외단기채무가 2000억달러가 넘는다. 외환보유고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너무 과중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 역시 위기에 닥쳐서 한꺼번에 상환요구를 받으면 어떻게 할거냐는 우려가 있었고, 이번에 실제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번 금융위기 전까지 금융기관의 단기외채 만기 연장률이 100%였다. 단기 외채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미국 등 외국에서 싼이자로 빌려다가 비싼 이자로 대출하는데 사용됐다.

결국 지난해 이런 자금들이 10월과 11월에 200억달러씩 빠져나갔고, 은행들은 자금마련을 위해 기존 대출은 회수하고 신규 대출은 중지하면서 달러를 사들이고 환율은 폭등하는 등의 위기를 맞게된 것이다.

- 현재 우리나라는 사상최저 금리를 기록하고 있다. 최저 금리로 가면 유동성 함정 문제도 우려되는데.

▲금리를 3%까지 내린 것은 워낙 경기가 어려우니까 잘했다고 본다. 일본에 이어 미국이 제로금리 시대로 돌입했는데, 이것은 노화경제의 극약처방인 것이다.

즉, 제로금리라는 것은 금리정책 수단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리라는 것은 돈을 풀리는 것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자 유동성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다. 금리가 점차 낮아진다는 것은 통화팽창의 빗장이 풀린다는 것과 같다. 금리가 낮아질수록 국제수지가 악화되고 환율이 오르게 된다. 즉 유동성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2∼2.25%의 금리가 이 기준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추가 금리 인하 여지가 있지만 그 폭은 얼마 없다. 경계선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더 위험하게 되면 추가금리 인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현재 유동성 공급이 적절한 수준인지, 예상되는 후유증은 없을 것인지. 후유증을 막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게 있나.

▲시중 유동성 지원에 한국은행이 비협조적이라고 하는데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부는 경기 성장과 부양을 우선하고, 중앙은행은 안정을 우선하기 때문에 그런 지적은 균형과 견제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정부는 은행권 자본확충펀드를 만들면서 한은이 10조원을 내라고 했다. 은행의 자금경색이 있으면 절대적으로 한은이 해야 하지만 은행의 자본확충은 재정 소관이라고 생각한다. 법률적으로도 한은법 소관이 아니다. 즉, 이것은 공적자금 투입대상인 것이다.

금융경색과 은행의 금융안정은 전혀 다르다. 미국이 금융안정을 위해 수천만달러의 자금을 지원키로 한 것은 국회의 승인을 받은 사항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한은을 동원하고 있다. 한은의 발권은 국회의 승인을 얻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예로부터 손쉽게 한은의 발권력을 활용하기 위해 애를 써왔고 이번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행은 빨리 고쳐져야 한다. 어렵더라도 국회의 승인을 받아 정당하게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동성의 과잉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총 화폐발행고는 30조원인데 반해 최근 몇달 사이에 20조원이 방출됐다. 은행 자본확충펀드에 10조원, 채권펀드에 5조원, 공공사업시 적자부채도 다 한은이 인수하게 되면 그동안 방출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추가로 쏟아부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제수지는 물론 환율, 부동산가격 거품 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리=shs@fnnews.com 신현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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