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한국 조선산업 ‘설상가상’..싸늘한 해운경기 발주취소 잇달아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1.01 17:31

수정 2009.11.01 17:31



세계 1위 한국 조선산업이 추락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조선산업은 지난해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전자, 자동차와 함께 국내 3대 외화벌이 산업의 지위를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조선산업은 전자와 자동차의 회복세와 달리 유일하게 바닥세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이는 선박 건조를 위해 금융권에서 70%, 나머지 30%는 발주처인 해운사에서 자금을 대주는 조선산업의 관행적인 구조가 발단이 됐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위기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 추가 건조자금 지원을 꺼리는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운경기도 올해 3·4분기까지 바닥권에서 머물면서 조선사들의 경기회복세는 더뎌질 수밖에 없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1위 한국 조선산업은 중국의 추격, 선주들의 발주 계약 지연 및 취소 요청, 글로벌 금융사의 자금 지원 차단 등의 우려로 인해 글로벌 최강자의 지위가 위태로워졌다.


이같은 조선사 위기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형 발주처들이 최근 잇따라 선박 발주를 취소하거나 연기 요청을 하고 있어 조선사들의 어려움이 더 심해졌다.

세계 3위 컨테이너 선사인 프랑스 CMA CGM은 지난 9월 말 파산선고 가능성을 언급,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이 프랑스 해운사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에 대량으로 선박을 발주해와 향후 국내 조선업계에 적잖은 영향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CMA CGM 경영진은 곧바로 국내 조선사들을 방문, 선박 계약의 연기나 계약 변경 등을 논의하겠다고 나서면서 국내 조선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4개 조선사는 CMA CGM으로부터 총 37척의 선박을 발주 받았다.

이중 삼성중공업이 발주한 1척만 지난 5월에 인도가 됐을 뿐 나머지 36척은 CMA CGM과 인도 협상을 벌여야 한다.

한진중공업은 부산 조선소 3척,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 10척 등 국내외를 합쳐 총 13척에 달하는 선박을 CMA CGM으로부터 수주했다. 국내 기업 중에선 가장 많은 수주량이다. 다른 조선사들의 경우 현대중공업 10척, 삼성중공업 6척(1척은 5월 인도) , 대우조선해양 8척 등을 CMA CGM으로부터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CMA CGM사로부터 지난 2007년 5월 컨테이너선 6척을 수주했으며 올해 5월 1척이 정상적으로 인도됐다. 또 11월에 두번째 인도에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 모두 인도될 예정이다.

게다가 선박 건조과정에서 보증을 선 금융기관들도 위기에 봉착했다. 일반적으로 금융사들은 선주로부터 선수금을 받은 조선사가 기한 내 배를 못 만들 경우 조선업체가 받은 선수금을 금융회사가 대신 물어주기로 약정하는 보증서인 ‘선수금 환급보증(RG)’ 계약을 체결한다. 그런데 최근 조선경기 불황으로 기간 내 선박 건조 및 인도가 어려워지면서 금융사들의 보증 책임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중견 해운사 TPC코리아와 조선사 YS중공업이 선박 발주·인도 계약 취소로 인해 보증을 선 동부화재가 어려움에 처하는 사례가 최근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중견 해운사 TPC코리아와 조선사 YS중공업이 선박 발주·인도 계약 취소로 인한 소송전에 휘말렸고 계약에 보증을 선 동부화재도 함께 분쟁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해운경기 하락으로 선주들이 발주한 선박의 건조 잔금을 조선사에 제대로 지불하지 않자 경영상 어려움에 빠진 조선사가 계약 해지와 함께 제3자에 선박 매각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중국 조선, 한국 추월 임박…플랜트 신사업 탈출구 모색

세계 2위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 수주도 국내 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 1위 한국 조선업이 신규 수주 부문에서 올해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최길선 조선협회장(현대중공업 사장)은 한·중 수주 1, 2위 격차가 뒤집힐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올해는 정상적으로 수주활동이 이뤄진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조선협회 입장은 그동안 세계 1위 유지는 향후 10년간 문제없다고 자신만만하던 태도에서 한발짝 물러난 듯한 답변으로 평가된다.

국제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 등에 따르면 척수 기준으로 한국은 올해 47척을 수주, 전 세계 발주량(238척)의 절반 이상을 휩쓴 중국(122척)과 큰 격차를 보였다. 또 9월 말까지 한국의 올해 신규 수주량은 133만3318CGT(점유율 29.4%)로 242만2681CGT(53.5%)를 기록한 중국에 크게 뒤졌다. CGT는 표준화물선 환산톤수다.

조선업체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수주잔량에서는 우리 업체가 아직 중국에 앞서 있지만 격차는 갈수록 줄고 있다.

중국은 9월 말까지 수주잔량이 5470만CGT(점유율 33.7%)로, 5550만(34.2%) CGT를 기록한 한국에 점유율 기준으로 사상 최소치인 0.5%포인트 차로 따라 붙었다. 이런 추세라면 수주잔량에서도 11월에는 순위가 바뀔 것이 확실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내 업체들은 중국과 일반선박 수주경쟁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산업인 해양플랜트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브라질, 중동, 러시아 등에서 대규모 유전개발이 이뤄지면서 플랜트 발주가 증가하자 국내 조선사들은 현지 진출을 통한 달러벌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해양플랜트의 경우 최대 수주액이 수십조원대에 이르며 보물창고로 여겨지지만 위험성도 적잖다.


브라질, 러시아 지역 국영 에너지 기업들은 ‘자국 건조주의’를 표방하면서 국내 조선사들에 꾸준한 기술 이전을 당당하게 요청하고 있어 국내 조선사들에 부담이 되고 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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