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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전문기자의 핀치히터] 이치로와 마쓰이 그리고 8·15

성일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8.13 04:10

수정 2013.08.13 04:10

[성일만 야구전문기자의 핀치히터] 이치로와 마쓰이 그리고 8·15

"우리에겐 두 명의 피트 로즈가 있다. 우리는 지금 야구에서 대기록을 남긴 미국인의 우상 피트 로즈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스 스피겔 판사가 탈세 문제로 기소된 피트 로즈에게 징역 5개월, 벌금 5만달러(약 5500만원)의 실형 선고를 내리면서 남긴 판결문의 일부다. 미국의 영웅에게 흠결을 내야 하는 판사의 가슴 아픈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트 로즈는 통산 4256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메이저리그 신기록이다.

종전 최고이자 2위는 타이 콥의 4191개. 20년 동안 해마다 200개의 안타를 때려내도 한참 모자라는 숫자다. 로즈가 미국인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기록 때문만은 아니었다.

1970년 신시내티에서 벌어진 올스타전. 로즈는 연장 12회 말 끝내기 득점을 올리면서 포수와 정면충돌하다 골절상을 당했다. 기자들이 "정규 경기도 아닌데 그럴 필요까지 있냐"고 묻자 "홈 관중들에게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은 선수의 의무다"라고 답했다. 신시내티는 로즈의 고향이다. 미국인들은 그런 로즈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로즈는 1989년 야구 도박과 관련, 야구계로부터 영구추방을 당해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그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스즈키 이치로(40·뉴욕 양키스)는 12일 현재(한국시간) 메이저리그 통산 2715개의 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 기록(1278개)과 합치면 3993개다. 미·일 합계 4000안타에 7개 차로 접근했다. 앞으로 2년을 더 현역으로 뛰면 메이저리그 통산 3000안타와 비공인 최다안타 신기록도 가능하다.

그런 스즈키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이유는 그가 내뱉은 숱한 망언 때문이다.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겠다."(월드베이스볼클래식 기자회견), "마늘 냄새가 나는 것 같다."(친선경기를 위해 한국에 입국하면서), "눈을 감고 스윙했을 뿐이다."(류현진에게 홈런을 친 후) 등등.

이치로의 망언은 일본 우익 정치인의 망언과 데자뷔처럼 연결돼 있다. 정치인들의 망언은 한국, 특히 고대사와 관련된 콤플렉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살아있는 신(現人神)으로 받드는 일본 왕실의 가계에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고, 그들의 고대문화가 한반도에서 전래된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스즈키의 망언에서도 유사한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스즈키와 마쓰이 히데키(39)는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일본 최고의 선수에서 메이저리그 우등생으로 탈바꿈한 궤적은 똑같다. 하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 차이가 난다. 마쓰이는 고시엔(일본 고교야구)의 스타에서 출발해 요미우리의 간판 타자로 활약했다. 일본 야구 최고의 엘리트 코스다. 스즈키는 무명의 고교시절과 결코 일류 팀으로 부르기 힘든 오릭스에서 뛰었다. 더 큰 차이는 가계의 뿌리에 있다.

마쓰이의 할아버지는 박재윤씨이고 아버지는 창웅씨다. 조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쓰이는 한국계다. 마쓰이는 지난 5월 일본인의 우상 나가시마와 함께 국민영예상을 받았다.

차기 요미우리 감독 1순위이기도 하다. 스즈키가 동년배 마쓰이에게 느끼고 있을 콤플렉스의 근원을 짐작할 만하다.
8·15가 이틀 남았다. 살아있는 위안부 할머니의 수는 57명으로 줄었고.

texan50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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