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허락도 없이 분만실에 우르르..” 수련의 참관 논란 재점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9.01 14:56

수정 2011.09.01 14:46

“벌써 10년전 일이지만 그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불편하고 수치스럽다. 자연분만이었는데 쌍둥이는 오랜만이라며 남자 수련의(인턴ㆍ레지던트)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들여다보고..”

주부 김모씨(39)는 지난 2001년 대학병원에서 쌍둥이를 출산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해당 병원의 남자 수련의들이 교육을 받는다며 김씨의 분만실에 들어와 참관해 진통보다 더한 수치심을 느꼈던 것.

김씨는 “첫 출산이라 아무 것도 모르고 대학병원에 갔는데 동의도 구하지 않고 처음보는 남자 수련의들이 들어와 진통에 신음하면서도 수치심에 더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임산부들의 사전 동의 없이 분만실에 수련의ㆍ의대생을 참관시키는 의료계 관행이 환자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등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의료계가 ‘참관 동의 요구시 교육하기 어려운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양승조 의원이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산부인과에서 진찰 받은 임산부 절반 이상이 진찰시 수련의 등의 참관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 의원실이 임산부 회원 4만여명을 보유한 한 인터넷 카페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85명 중 98명(53%)이 산부인과에서 진찰(가슴ㆍ치질치료 포함)ㆍ분만 등 각종 의료서비스를 받을 때 담당 의사ㆍ보조 간호사를 제외한 제3자(레지던트ㆍ인턴 등 수련의)가 참관했을 때 ‘수치심과 불편함을 느꼈다’고 답했다.

임산부들은 참관시 사전에 환자 동의를 얻어야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응답자 521명 중 504명(96.7%)이 ‘아무리 교육 목적이라도 제3자가 입실할 때는 환자에게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이 이같은 의료 현실을 바꾸기 위해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려고 했으나 의료계가 ‘참관시 환자의 사전 동의를 구할 경우 현실적으로 수련의 교육이 어려워진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김일호 회장은 “참관할 때 일일이 서명을 받으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달가워하는 환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회장은 이어 “참관시 환자 동의를 받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수련의들이 교육 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면서 “장기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도 “환자 서면 동의 관련 법안은 의료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법으로서 수련과정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야 할 의사의 양성에 큰 걸림돌이 되며, 만약 법제화가 된다면 까다로운 교육과정으로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은 더 줄어들 것” 이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관련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 중인 민주당 양승조 의원은 “의료계에서 수련의 교육 등을 이유로 반발해 보류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환자의 인권과 수련의들의 교육이라는 가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 토론 등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양 의원은 “외국의 경우 분만할 때 뿐만 아니라 진료 참관 시 환자의 동의를 먼저 구하는 곳이 많다”면서 “교육 목적도 중요하지만 환자들의 인권 보호가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도 “의료계에서는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갈 경우 참관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대다수는 치료 받으러 가는 것이지 교육 대상이 되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사전에 교육 목적의 참관에 대해 환자를 설득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도록 하는 것이 의료계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humaned@fnnews.com 남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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