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뒷전' 혈세 '꿀꺽'

      2000.08.22 04:57   수정 : 2014.11.07 13:13기사원문

금융감독원이 22일 발표한 44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기업과 기업주 및 채권단(경영관리단)에 대한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여부 실태점검결과는 우리의 기업구조조정이 얼마나 부도덕하게 진행됐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워크아웃제도를 악용, 일부 부실기업경영진과 기업주들은 특혜자금을 지원받아 자신들의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해 했는가하면 이를 관리해야할 채권단들마저 부실기업들의 도덕적 해이행태에 동참하거나 묵인한 사실이 무더기 적발됐다.여기에 금융당국 또한 뒷북치기식 실태조사에 나섬으로써 워크아웃제도는 효율적인 기업개선이라는 당초의 좋은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총체적 도덕상실’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마저 낳고 있다.
정부는 지난 98년6월 사실상의 집단 부도사태에 직면한 기업들을 살려내기 위해 워크아웃제도라는 기업회생장치를 마련하고 대상업체들에 채무동결,저리자금수혈 등 온갖 특혜를 부여해왔다.또 워크아웃업체 지원으로 타격을 입은 채권금융기관에겐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 국민들의 혈세부담을 가중시켜왔다.한마디로 정부는 국민의 돈으로 금융기관을 지원하고 금융기관은 그돈으로 워크아웃대기업의 목숨을 연장시키는 정책을 펴 온 것이다.어떻게든 회생가능성이 있는 부실기업을 살려 우리경제를 다시 강건히 하겠다는 정부말만 믿고 국민들은 워크아웃업체 증가에 따른 막대한 혈세부담을 감내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그런 만큼 워크아웃업체들에 대한 관리는 아주 철저하고 투명하게 이뤄졌어야 했다.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부실기업 및 기업주·경영진 중 상당수는 나라돈으로 지원된 회사자금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해외현지법인 자금관리를 소홀히 하고 관계회사에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줘 부실을 가중시킨 기업도 상당수에 달했다.국민들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결국 부실기업주와 일부 채권단에게는 ‘눈 먼 돈’으로 비춰진 것.

기업개선약정상의 사재출연 약속을 지킨 기업주 또는 대주주는 거의 없었다.기업이 부실에 늪에 빠져 채무를 조정받는 기업의 사주들이 퇴진하지 않고 경영을 간섭하는 행위도 무더기 적발됐다.부실기업주중 상당수는 대외활동에 과도하게 치중하고 있으며 심지어 채권단 동의 없이 신규사업을 확장하거나 위장계열사를 소유한 경우도 있었다.금감원 관계자는 “44개 점검 업체중 적발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모럴해저드현상이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도덕불감증에 빠지긴 채권금융기관들도 마찬가지였다.기업개선실패 기업주에 대한 책임추궁이 미흡했는가하면 워크아웃 대상업체의 경영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워크아웃기업의 투명성제고를 위한 경영진 추천이 부적절하게 이뤄졌고 자금관리도 엉터리였다.

상황이 이지경에 이른데는 금융당국의 책임도 막중하다.워크아웃제도가 도입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금감원은 여론에 밀려 지난 7월에야 실태조사에 나서는 뒷북치기 행정태도를 보였다.그뿐아니다.금감원은 워크아웃기업 및 기업주·경영관리단의 비도덕적 행태를 발표함에 있어서도 끝까지 부실기업주와 비리경영인을 감싸려다 마지못해 일부 비위행위자 명단을 공개하는 무사안일한 태도를 보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금감원은 부도덕한 기업주 및 기업에 대해서는 국세청등 관계기관에 통보,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지만 사후약방문식으로 진행되는 사후조치가 얼마나 치밀하게 진행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 fncws@fnnews.com 최원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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