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사는 2002 월드컵 전과 후로 나뉜다
2022.05.30 06:03
수정 : 2022.05.30 08:58기사원문
[편집자주]보면서도 믿기 힘들던 2002 월드컵 4강의 기적이 벌써 20주년을 맞았다. <뉴스1>은 그때의 영웅들을 만나 과거와 현재를 되짚고 새롭게 나아갈 20년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언제 떠올려도 흐뭇할 일이나 매양 '그땐 그랬지'로 끝나선 곤란하다.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2002 월드컵 4강 신화는 그저 '그때의 행복'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대회를 준비하면서 쏟은 다양한 노력들은 이후 한국 축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발전하는 자산이 됐다.
2002년 6월이 한국 축구계에 안긴 선물은 대단했다. 우선 인프라 구축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 축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 중 다수는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처음 생겼다.
먼저 이 땅에 10개의 월드컵경기장이 생겨났다. 이 경기장들은 모두 월드컵 기준에 맞는 초대형 경기장일 뿐 아니라 관중 입장 동선, 잔디, 미디어 수용, 부대시설 등 이전까지 한국 축구에서 보기 힘들었던 최고의 인프라를 갖췄다. 전국 각지에 세워진 이들 10개 경기장을 토양 삼아 한국 축구의 인프라는 완전히 바뀌었다.
4강 신화의 주역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은 "한국 축구는 2002 월드컵 전과 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맨땅에서 경기할 정도로 열악했다. 하지만 2002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인프라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중요한 분수령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2002 월드컵은 내 삶을 BC와 AD로 나눈 분기점이다. 축구 인생과 개인적인 삶 모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2 월드컵 성공 개최에 큰 역할을 했던 이용수 KFA 부회장은 "2002 월드컵이 없었더라면 그런 좋은 경기장을 한꺼번에 10개나 갖게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월드컵을 개최하지 않았다면)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월드컵 규격을 갖춘 경기장 10개를 갖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고 설명했다.
훈련 시설 등도 2002 월드컵 준비를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이야 파주NFC와 천안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건설 중)를 비롯, 전국에 훌륭한 훈련 시설들이 많다. 하지만 2002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이용수 부회장은 "(2002 월드컵) 이전에는 A대표팀도 훈련 한 번 하려하면 버스를 타고 잔디구장을 찾아 뱅뱅 돌아야 했다. 훈련 한 번 하러 하남까지 다녀오는 일도 흔했다"고 회상했다.
2002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파주NFC를 건립, 비로소 각급 남녀 대표팀이 언제든 훈련할 수 있는 전용 훈련시설이 생겼다. 이후 파주NFC는 대표팀 훈련뿐 아니라 축구 산업 관련 세미나와 교육 등 한국 축구 발전을 꾀하는 요람이자 성지로 자리 잡았다.
유소년 시스템과 지도자 교육 등 오늘날 한국 축구 발전에 큰 기능을 하고 있는 주요 시스템들도 이 시기 만들어졌다.
이용수 부회장은 "2002 월드컵을 준비하며 KFA 차원에서 '비전 2010'이라는 중기적인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했다. 지금의 지도자 라이선스 시스템과 관련 커리큘럼도 이 과정서 도입됐다. 또한 드래프트 제도를 자유선발 제도로 바꾸면서 유소년 축구 환경이 크게 바뀌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2002 월드컵이라는 메가 이벤트를 등에 업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큰 틀에서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축구계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시스템 변화도 월드컵이 없었더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아울러 이때 만들어진 '비전 2010'의 성공은 KFA가 새롭게 진행 중인 '비전 해트트릭 2033'이라는 또 다른 중장기적 프로젝트의 수립과 실현까지 가능하게 하고 있다.
2002년 당시 10개 팀으로 구성된 1부 리그뿐이었던 K리그가 이제는 K리그1·2를 합쳐 23개 팀으로 늘어나고 K3부터 K7까지 탄탄한 하부 리그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도 결국은 2002년이 준 선물인 셈이다.
2002 월드컵은 한국 축구,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에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식의 변화'도 가져왔다. 눈에 보이는 경기장과 잔디 구장의 증가보다도 더욱 큰 센세이션이었다.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은 "2002 월드컵 당시 축구는 남녀노소, 진영, 계층을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 모두를 하나로 묶었다.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는데, 축구가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걸 한 번이라도 느껴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한 위원은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와 팬들 간의 접촉면이 늘어났고 축구를 보는 형태와 규모가 완전히 새 역사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시기 한국 축구는 공정함이 뿌리내렸고, 과학적 시스템 도입에 대한 필요성도 실감했다.
한 해설위원은 "2002 월드컵 당시 대표팀은 공정한 선수 선발로 한국 스포츠 사상 최고의 성과를 냈다"면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공정한 선발과 과학적인 운영은 한국 축구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 한국 축구에 만연하던 학연·지연과 불공정한 악습 등이 많이 사라져, 발전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각 분야별 전문 코치와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훈련 프로그램 도입도 이 시기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2002 월드컵 대표팀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한국 축구 전체가 자신감을 얻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용수 부회장은 "이전까지 1승도 하지 못했던 대표팀이 4강까지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축구 전체가 자신감을 얻었다. 엘리트 축구인 A대표팀의 성공이었지만 그것은 그동안 쌓여왔던 한국 축구 전체의 가능성을 활화산처럼 터뜨리는 계기가 됐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장에서 오랜 시간 축구해설도 겸했던 이 부회장은 "2002년 이후 한국 축구는 중요 대회에 나설 때마다 이전보다 훨씬 자신감을 갖고 나서고 있다. 그때의 열매가 한국 축구 전체를 20년 동안 받쳐준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2002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렸던 설기현 경남FC 감독 역시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설기현 감독은 "이전까지 유럽이나 남미 등 강호들과 경쟁한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2002 월드컵 이후로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비단 A대표팀뿐 아니라 국가대표팀 선수를 꿈꾸는 많은 유망주들, 축구 산업계에 종사하는 관계자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까지 이전엔 갖지 못하던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를 등에 업고 한국 축구는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 다가올 2022년 월드컵에서도 그동안 축적된 자신감과 실력을 바탕으로 더 큰 성공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002 월드컵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상식과 모든 기본적인 것들을 가능하게 한 큰 계기"라면서 "참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