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나노 공장 첫삽 뜬 ‘라피더스’… 日반도체 반격 신호탄될까
2023.09.24 19:26
수정 : 2023.09.24 19:2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히노마루(일장기) 반도체' 굴기의 선봉인 라피더스가 설립 약 1년 만에 첫번째 공장 건설을 위한 삽을 떴다. 앞으로 4년 안에 2나노(㎚·10억분의 1m) 칩을 양산해 대만 TSMC,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라고 다소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지만, 일본인들은 라피더스에 일본 반도체의 미래를 걸고 있다.
■도쿄돔보다 큰 1공장, 2공장도 준비중
24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자국 대기업들과 힘을 합쳐 설립한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가 지난 1일 홋카이도 치토세에서 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라피더스는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의 대표적 대기업 8곳이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지난해 11월에 설립한 연합 회사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라피더스에 대해 3300억엔(약 3조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날 기공식에 영상 메시지를 통해 "예산, 세제, 규제 등 모든 측면에서 투자 지원 패키지를 만들 것"이라며 강력한 지원 의지를 드러냈다.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인재 확보도 순조롭다"며 "미국 IBM에 60여명의 기술자를 파견하는 등 국제적인 협력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피더스는 2나노 공정의 반도체를 2025년에 시험 생산하고, 2027년부터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전자와 대만 반도체 업체 TSMC는 2나노 반도체의 양산 목표 시점을 2025년으로 잡았는데, 단숨에 이들과 격차를 좁히겠다는 야심을 나타낸 것이다.
라피더스가 홋카이도에 제출한 건축계획 개요서에 따르면 치토세 공장의 첫번째 동인 IIM-1의 건축면적은 도쿄돔보다 큰 약 5만4000㎡에 이른다. 공장은 지상 4층, 높이 31m의 면진 철골 구조의 건물이다. 공장 주변 전기설비와 수처리, 가스공급 등의 시설을 포함한 연면적은 약 15만9000㎡가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라피더스는 이미 1공장과 인접한 부지도 추가로 확보하고 있다"며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2공장 등 이후 건설 계획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빅스텝으로 빅4, "어떻게?"
전 세계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은 TSMC, 삼성, 인텔의 3파전으로 현재 3나노 대에서 기술경쟁이 치열하다. 로드맵상 이들과 2나노 경쟁을 같은 시점에 하겠다는 라피더스의 계획에 대해 현지에서도 비판이 만만찮다.
업계에서는 기술과 인프라 등을 고려했을 때 2027년 2나노 양산은 너무 꿈 같은 목표이며 무리한 도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 일본 내 반도체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칩은 여전히 40나노 공정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 반도체 업체의 한 법인장은 "설립 1년 동안 이렇다할 성과와 실체가 아직 없었다"며 "이제 막 1공장 터 닦기를 시작했는데 몇십년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한 삼성과 TSMC의 기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따라잡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회사의 불가능한 목표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 메시지 정도로만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 주도의 국가 산업 프로젝트의 말로가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났던 전적도 우려를 더한다.
이 법인장은 "2012년 일본 정부가 추진해 망한 '엘피다' 케이스는 일본 산업계 전체의 트라우마가 됐다"며 "라피더스는 제2의 엘피다가 될 것이란 자조도 일본 산업계에 공공연하다"고 전했다.
인프라 쪽에선 대량의 물 공급이 문제다. 반도체 공장은 생산 공정에서 미세한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한다. 우선 2025년 시험 라인 가동 때는 하루 400만L의 물이 필요하다. 시험 라인 때는 치토세시가 전량을 공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2027년 양산 때는 약 10배인 4000만L가 필요한데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이는 10만명 인구의 치토세시 전체 1일 평균 수도량인 3300만L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인근 치토세강 등의 수원과 수로 정비 등을 통해 총력을 다하겠다는 게 시의 입장이지만 양산 계획에 큰 차질이 될 수도 있다.
■3개의 난관, 극복할 수 있나
2나노 최첨단 칩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제조 기술 개발 △국내외 고객 확보 △막대한 자금 확보 등 3가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기술과 관련해선 IBM, 벨기에에 본사를 둔 유럽 최대 반도체 종합연구소인 'imec'과 협력을 진행 중이다. 자금이나 인재를 보내 기술 지도를 받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사 2나노 기술을 얻었다치더라도 대규모 투자금은 또 다른 진입장벽이다. 라피더스는 총 투자액 5조엔(약 45조원)이 드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시제품 생산에 2조엔, 양산에 3조엔이 추가로 필요하다. 기존 확보한 3300억엔 보조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회사는 향후 기업공개(IPO)를 검토 중이지만 흥행 여부는 역시 미지수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고객 확보다.
고이케 사장은 일반 범용제품보다 10배 비싼 컴퓨팅 칩을 만들어 팔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업력이 없는 신생 업체인 라피더스의 칩을 비싸게 주고 살 고객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닛케이는 "한국과 대만은 특정 기업에 정책 지원과 민간 자금을 집중해 세계 유수의 반도체 회사를 만들었다"면서 "라피더스는 일본 반도체 부활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k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