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피부에서 항생제 만든다

      2007.09.30 16:12   수정 : 2014.11.04 23:24기사원문


항생제 남용이 인류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항생 물질이나 약물에 견디는 힘이 강한 내성균이 생겨 고통을 겪는 환자가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는 어떤 약도 듣지 않아 사망하는 환자도 발생한다. 어떤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다른 생물체로부터 항생제를 얻는 연구가 최근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각종 식물은 물론 동물에서 내성이 강한 항생제를 추출하는 실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생물체는 개구리다.

국내에선 서울대 물리약학실 이봉진 교수팀이 토종 개구리에서 추출한 ‘항생펩타이드’로 인간에게 적합하고 내성이 강한 항생물질을 만들고 있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도 개구리연구소를 설립해 항생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생물체로부터 항생제를

지구상의 생물들은 오랜 생존기간을 통해 병원균과 싸우는 방법을 습득해왔다. 생물들은 병원균과 싸우기 위해 공통된 무기 하나를 장착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항생펩타이드다.

항생펩타이드는 다른 항생제와는 달리 병원균 밖에서 균을 공격한다. 이들은 나사처럼 생긴 형태를 이용해 균의 외부 세포막을 공격해 구멍을 뚫음으로써 병원균을 죽인다. 이는 항생펩타이드가 병원균이 자신을 방어하기(내성을 나타내기) 어려운 작용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항생펩타이드는 병원균뿐만 아니라 곰팡이 등에도 효과가 있다. 일부는 암세포와 바이러스에도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항생펩타이드는 인간세포에는 작용하지 않는 특징이 있어 부작용이 없는 항생물질 개발이 가능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최근 항생펩타이드는 의약품은 물론 화장품 첨가물, 동물 및 어류사료 첨가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항생펩타이드는 지금까지 개구리, 두꺼비 등 양서류, 메기 등 어류, 식물씨앗 등 대부분의 생물들에서 발견돼 왔다.

과학자들은 항생펩타이드를 일반 항생제의 독성 및 방부제의 부작용도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적 약물이라고 부른다.

■주목받는 개구리

여러 생물의 항생펩타이드 중 개구리의 항생펩타이드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개구리는 아주 연약한 몸을 가지고 있다. 다른 동물들처럼 딱딱한 껍질로 무장한 것도 아니고 촘촘한 털이나 두꺼운 가죽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다. 징그러운 느낌이 들 정도로 축축한 피부가 전부다. 그런데도 개구리는 돌 틈이나 풀 속, 더러운 웅덩이 같은 곳에서 산다. 긁히고 찔려 상처가 나고 거기에 세균이 감염돼 금세 죽을 것 같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 수를 불려 나간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주목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뭔가가 개구리 몸에서 분비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1987년 미국의 외과의사인 자슬로프 박사가 살아있는 아프리카 개구리의 배를 절개, 실험용으로 쓰기 위해 알을 채취했다. 그 후 배를 봉합하기는 했지만 깜빡 잊고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다. 얼마 뒤 살펴보니 그 개구리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절개한 부위도 깨끗이 아물어 있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자슬로프 박사는 개구리에서 분비되는 항생펩타이드를 발견했다.

실제 세계 각국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개구리와 관련된 것들이 유독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구리를 잡아 말린 후 곱게 갈아 기름에 섞어 상처,부스럼 등 피부병이 난 곳에 발랐다.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한다. 이탈리아에선 입 안이 헐거나 상처가 났을 때 개구리를 잡아 산 채로 입에 물고 있게 한다. 개구리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아픈 곳을 낫게 해 준다고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다른 생물보다도 더욱 다양하게 진화해 매우 많은 종류가 발견되고 있어 약물 개발에서도 유리하다.

■어떻게 만드나

개구리의 항생펩타이드는 주로 피부에서 나온다. 하지만 개구리에서 직접 이를 추출해 항생제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연구진은 개구리 피부에서 분비되는 물질의 구조와 성분을 알아내면 이를 저렴하게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 단백질구조 분석에 들어갔다.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을 제약회사들이 합성해 내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서울대 이 교수팀은 개구리에 약한 전기 쇼크를 준 후 피부에서 분비되는 항생펩타이드를 채집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는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은 단백질인 펩타이드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지난 2005년 개구리의 항생펩타이드가 24∼37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됐다는 것을 규명했다. 하지만 이는 약물을 대량으로 만드는 데는 길이가 너무 길다는 단점을 발견했다.

이 교수팀은 이어 아미노산의 순서를 바꿔 이를 11개짜리 구조로 변형하고 올해까지 개량화 작업을 거쳐 최종 물질을 만들었다. 이 물질은 현재 동물실험을 마치고 임상실험을 하기 위해 미국에 제조를 의뢰해 놓은 상태다.


이 교수는 “내년부터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동시에 임상실험에 들어간다”면서 “피부에 바르는 연고는 임상실험 기간이 짧기 때문에 3∼4년 후엔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임상실험이 성공하면 곧 먹는 약과 주사제도 상용화할 계획이다.


그는 “미국의 마이크로 로직스나 소마 등의 회사들은 이미 임상 3상에 들어갔고 일본 도쿄대 연구팀도 제약사와 함께 곤충을 이용한 항생제를 만들었다”면서 “비교 시험 결과 우리 연구팀이 만드는 항생제는 사용량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고, 가격도 대폭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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