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 회장 “지금 장남 후계수업중,실력 없으면 잘라야지”
2010.11.17 21:44
수정 : 2010.11.17 21:44기사원문
"산업은행, 내 돈 3000억원은 안갚는다고 하던가?"
진지한 듯 거침 없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화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11일 서울 주요 20개국(G20) 비즈니스 서밋이 열린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만난 김 회장은 의욕에 찼다. 비즈니스 서밋 금융분과에 참석, G20 참가국에 신재생에너지 생산 전력을 2015년 10%, 2020년에는 20%까지 의무적으로 구입할 것을 제안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선보였다. 또 행사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장남 김동관 차장이 참석할 수 있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대동하고 나타나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본지 기자를 만난 그는 시종일관 진지한 듯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3세 경영참여와 인수합병(M&A)에 대한 구상, 언론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실력이 없으면 잘라버리지 뭐, 아들이 셋인데…. 나는 저 나이 때 그룹을 이끌었는데 못할 것도 없지."
참석하는 행사마다 김 차장을 대동하는 이유가 3세 경영 승계를 위한 경영수업이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기업에서도 이런 기회를 많이 활용해야 하는데…"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이내 바로 옆에 선 김 차장이 들으라는 듯, 실력이 없으면 얄짤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승연 회장은 29살 때 그룹 총수에 오른 걸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최연소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는 1984년 LA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정몽준 의원과 한 비행기를 탔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비행기가 LA공항에 도착할 무렵, 정주영 회장이 곤히 자고 있던 정 의원을 깨웠다고 한다. "몽준아, 몽준아." 흔들어도 안 일어나자 "어이 정 사장, 일어나!" 다시 한 번 흔들어서 정 의원을 깨웠다. "정 의원, 내 동창인데, 아버지와 함께하는 그 모습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그때 나에겐 노바디(nobody),아무도 없었다. 모든 걸 혼자서 결정했어야 했다"고 하곤 잠시 말을 잊었다. 그는 1981년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지병으로 작고하자, 경영수업을 받던 중 갑작스럽게 29살에 회장직에 올랐다.
김동관 차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시점은 언제쯤이 될 것이냐는 질문엔 김 회장은 경영승계를 의미한 듯 "언제가 좋으냐"고 기자에게 되물은 뒤 "나도 모른다"고 답했다. "나는 저만할 때 회사를 물려받았다. 경영 참여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내가 있을 때(건재할 때) 나서서 해야 할 일들은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해 그룹 앞에 놓은 현안에 대한 무게감을 짐작하게 했다.
평소 김 차장에게 강조하는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엔 "직원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 분수를 알고, 신용과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법, 신용과 의지를 잃으면 회복하기 힘들다.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한화의 인수합병(M&A) 등 신사업에 대한 구상이 궁금해졌다.
'최근 산업은행 민유성 행장을 만났는데, 시장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대우조선해양 매각 작업을 재개한다고 들었다'고 하자, 대뜸 "내 돈 3000억원은 안 갚는다고 하던가. 집구경(대우조선 실사)도 안 시켜주고…"라고 받아챘다. 현재 산업은행과 법정다툼 중인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이행보증금 3000억원을 두고 한 말이다.
대우조선 인수전이 재개되면 다시 뛰어들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그 돈(대우조선 인수자금)을 태양광분야에 투자하면, 모듈부터 전 분야에서 1등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매각이 재개돼도 다시 참여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태양광 사업은 김 회장이 최근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업이다. 이번 비즈니스 서밋에서 신재생에너지 의무 사용을 의욕적으로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한화그룹에선 한국우주항공(KAI) 인수에 관심을 갖고 태스크포스를 구성,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KAI 인수에 대해선 "정부에서 해외 수출을 성사시킨 뒤로 매각을 보류시킨 걸로 알고 있다"며 "매각이 재개되면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할 일"이라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또 "한화는 방위산업으로 성장한 기업이라 매도자 측에서도 관심을 갖고 한화를 지켜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G20 비즈니스 서밋에서 쟁점화되거나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로열 더치 셀' 같은 기존 석유회사에선 신재생 에너지를 앞당길 필요가 있겠느냐는 유보적인 의견을 펼쳤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대화가 길어지자, "그룹 홍보실에서 밖에 나가서 말씀 좀 하지 말라고 한다. 뒷문으로 들어가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언론과의 관계가 그래선 안된다고 본다. 언론에 이야기 할 건 해야 한다고 본다. 가끔 (내 입장에서 볼 때)언론이 사안을 비스듬히 보기도 하지만,그건 언론 본연의 비판기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 한때 경향신문을 운영한 적도 있는데 언론사를 다시 운영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언론은 언론인이, 기업은 기업인이 맡아야 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대화가 끝나도록, 김 차장은 아버지 곁을 묵묵히 지켰다.
/ehcho@fnnews.com조은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