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좀 켜게 해주세요” 어느 임신부 공무원의 호소
2013.07.13 03:03
수정 : 2014.11.05 10:48기사원문
원자력발전소 일부 가동 중단과 불볕더위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으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우려가 커지면서 전국의 관공서와 민간기업, 상가시설 등에 제한냉방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행정편의주의적인 절전정책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12일 경기도청에 따르면 도청의 한 고위공무원은 최근 도청 소속 한 임신 여직원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이 공무원이 받은 메일 내용은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냉방이 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무더위를 견뎌내느라 업무는 고사하고 힘든 몸을 지켜내는 것조차 버겁다는 내용이었다.
메일 내용에 따르면 "하루종일 더위에 시달리고 나서 퇴근해 집에 들어오면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어지럽다"며 "업무효율은 고사하고 뱃속의 아이까지 지켜내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적혀 있다. 그는 "더위에 고생하는 것이 한두 사람이 아닌 상황에서 불평처럼 들릴까 봐 걱정"이라면서도 "임신이라는 특별한 상황까지 배려받지 못하는 것이 견디기 어려워 이렇게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고 했다.
경기도청의 경우 임신한 여직원은 20여명으로 모두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해당 직원들의 설명이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력위기만을 강조하는 정부의 일방적인 에너지절약 정책이 임신부와 더위에 취약한 일부 공무원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일선 지자체에 하달한 에너지절약 지침에는 실내온도 28도 유지, 전력피크시간(오후 2~5시) 냉방기 순차 운휴, 7.8월 전력 사용량 전년 대비 15%(피크시간대 20% 이상) 의무감축 등이다. 전력 5%를 감축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20%나 감축하기 위해서는 에어컨 가동은 생각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에서 더위와 싸워야 한다. 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에도 실내온도는 30도를 오르내리고 전기절약을 위해 사무실 반쪽만 켜놓은 형광등은 책상 위 서류조차 제대로 읽기가 어렵다. 사무실에 비치된 2~3개의 선풍기로 더위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인 데다 이마저도 켜지 못하게 하는 사무실도 많다.
건강한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임신했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공무원들은 속수무책이다.
임신부 여직원의 이 같은 호소를 전해들은 경기도는 스마트워크센터에 12석 규모의 임신부 전용 사무실을 마련하기로 했으며 임신부 전용 의자를 제공하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다. 임신부들은 더위가 심한 피크시간 때 이 사무실을 이용해 더위도 식히고 별도 업무도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일선 시·군에서는 정부 지침을 지키기 위해 거의 강제적인 절전을 실시, 취약층에 대한 배려는 꿈도 꾸지 못한다.
경기지역에서 가장 더운 청사로 유명한 성남시의 경우 매일 찜통더위에 시달리면서도 임신부 등을 위한 자체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용인시와 수원시 등 대다수 기초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정부 지침이 워낙 엄격해 지자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임신부를 위한 스마트오피스와 같은 공간을 일선 지자제에서도 확보할 수 있도록 사례를 전파하기로 했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에너지절약 대책이 지속되는 한 이로 인한 2차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jjang@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