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그 쓸데없는 잔인함,그리고 포로의 폭력
2014.05.15 17:08
수정 : 2014.10.27 12:55기사원문
저자 프리모 레비는 그의 책 제목에서 보자면, '구조된 자'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유대계로, 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 저항운동을 펼치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뒤 종전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예민한 20대를 수용소에서 보냈으니 작품 대부분이 아우슈비츠의 회고와 기록물일 수밖에. 그 경험들의 사유와 성찰이 집약된 것으로 평가받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그가 토리노 자택서 돌연 자살하기 직전 연도(1987년) 출간작이라는 점에선 그의 최후 고백서이자 간절한 유언서로 볼 수 있다.
레비는 수용소 기억과 경험을 살려 불온하기 그지 없는 인간 존재의 근원을 파헤쳤다. '영웅의 귀환'으로 표현되는 생환자들에 대한 수사에 저항하면서 그 이면에 감춰진 그들의 수동적이고 폭력적인 세계를 직시했다. 신입 포로들이 당하는 최초의 폭력은 당국에 협력함으로써 크고 작은 특권을 얻은 동료 포로로부터 온 것이었다고 레비는 증언한다.
나치 체제의 폭력은 '쓸데없는 잔인함'의 극치다. 직접 목격한 강제이송의 풍경은 잔혹, 그 자체였다. 그는 강제로 끌고 갈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게 더 간단하고, 경제적이지 않았겠냐고 스스로 묻는다. 하지만 나치의 이런 잔혹행위 밑바닥엔 죽이는 자의 죄책감을 덜려는 목적도 있었다는 걸 상기시킨다. 희생자는 죽기 이전에 인간 이하로 비하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수용소로부터의 해방은 자유의 기쁨뿐아니라 치욕과 죄책감까지 안겼다. 최고의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용기라는 미덕 때문에 모두 사라지고, 회색지대 협력자들과 체제에 적당히 적응한 최악의 사람들만 결국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는 홀로코스트가 가능했던 건 광기에 사로잡힌 나치 지도자들의 악마성에만 한정시키지 않는다. 유럽의 광범위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동조로, 그들 인간의 비겁함이 극단을 만들어냈다고 믿는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서 차용한 제목의 '가라앉은 자'는 수용소의 전멸 체제에 휩쓸린 사람들을 말한다. 레비는 그들 완전한 증인을 대신해 '구조된 자'들이 증언을 하고 있지만, 이런 증언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의 가르침이 역사의 일반적인 잔혹사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잊힐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이런 열패감이 그의 생명을 스스로 끊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그때의 아우슈비츠로부터 완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