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 "가족·동료·관객.. 내가 무대에 서는 이유"
2015.03.25 17:05
수정 : 2016.02.24 18:05기사원문
"커튼콜서 관객들 눈마주칠때 나쁜 것 다 빠져나가는 느낌"
지난 1월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대학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배우 10명을 만났다.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세라 배우가 "뮤지컬 '아가사'에 합류하게 됐다"며 신이 나서 말을 꺼냈다.
"최정원 선배님과 한 무대에 서게 된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선배님 보면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웠거든요. 저도 최정원 선배님처럼, 저를 보고 후배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항상 생각해요."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그 '선배님' 최정원을 만났다. 원체 에너지 넘치는 그녀이지만 유독 생기가 넘쳤다. "오늘 공연이 있는 날이라 제가 좀 흥분했어요. 공연 없는 날은 지금 보다 좀 덜 밝거든요. '아가사'에서 젊은 감각의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서니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 같아요."
서울 대학로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창작뮤지컬 '아가사'는 1926년 12월 당대 최고의 여류 추리소설 작가였던 아가사 크리스티(1890~1926)가 11일간 실종됐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미스터리극이다. 극중 남편의 불륜, 믿었던 유모의 배신, 기자들의 혹평, 신작에 대한 압박까지 아가사가 견뎌야 할 무게는 가혹하다. 우울함과 고독함으로 가득한 이 캐릭터를 정반대 성격의 최정원이 소름돋게 연기한다.
사실 최정원이 창작뮤지컬에 오른 적은 드물었다. '아가사'는 지난 2008년 '소리도둑' 이후 7년만의 창작뮤지컬 출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정원이 데뷔한 1989년 당시 한국은 창작뮤지컬은 물론 라이선스의 개념도 없었다. 이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카고' '키스 미 케이트' '지킬 앤 하이드' 등 수많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한국 초연 무대에 서며 뮤지컬배우 1세대로서 한국 뮤지컬의 대중화를 이끌어 왔다. '시카고'에서는 벨마와 록시, '키스 미 케이트'에서는 비앙카와 케이트로 같은 뮤지컬에서 두 여주인공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간 드라마 출연이나 교수 제의도 많았어요. 하지만 한길만 걸었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뮤지컬 전문배우로 무대에 서 왔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지난해 10주년을 맞은 '지킬 앤 하이드'는 현재 공연 중이고 올해는 창작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가 20주년을 맞아 역시 기념 공연이 예정 돼 있다. 최정원은 두 작품의 한국 초연 배우다. 한국 뮤지컬의 살아있는 역사인 셈. "제가 처음 연기했던 캐릭터의 특징들을 후배들이 따라하는 걸 보면 뿌듯한 한편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최정원은 "무대에 대한 식지 않는 사랑"이 자신을 이끌어 왔다고 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할머니 역할로 휠체어에 앉아 무대 위에서 세상을 뜨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그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만큼 무대를 사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뭘까. 그건 '사람'이었다. "가족, 동료, 관객. 저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무대 서는 게 의미가 없어요. 커튼콜에서 관객과 눈을 마주칠 땐 몸 속에 나쁜 균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쾌감을 느끼죠."
'아가사'에 이어 쉴 틈도 없이 오는 5월에는 뮤지컬 '유린타운'에 출연한다. 최정원의 기분을 더 띄워주고 싶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세라 배우를 만난 얘길 했다. 최정원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