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에 미친 삶이 알짜 기업 키웠다

      2015.06.23 17:06   수정 : 2015.06.23 17:06기사원문
"기술개발은 죽을 때까지 하는 겁니다." "엔지니어로 평생을 살아 온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인문계열 전공자 90%가 논다는 '인구론'이 회자될 정도로 청년실업은 심각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술 하나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간 전문 기능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여전히 높지 않다. '기름밥' 먹는 일은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해 빈자리가 있어도 젊은이들에게 외면받기 일쑤다.
최근 방한한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한국을 벤치마킹, 인도를 제조업 강국으로 키우겠다고 할 정도로 한국 제조업 위상은 해외에서 생각 외로 높다. 윙윙거리는 기계음 속에서,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채 기술에 미쳐 한평생 살아온 '숨은 애국자'이자 '대한민국의 희망'인 기능한국인 6명을 파이낸셜뉴스 수습기자 6명이 산업현장에서 만났다. 기능한국인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매월 선정해 발표한다. 2006년 9월 첫 기능한국인을 선정한 이래 6월 현재 100번째 기능한국인 탄생을 앞두고 있다. <편집자주>

■명진화학 정을연 대표 "기술에 미친 삶이 알짜 기업 키웠다"

인천 검단산업단지에 위치한 명진화학의 정을연 대표(47)는 산업용 도금 부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능인이면서 전문가다. 지난해 매출액 45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알짜 기업을 일군 과정을 정 대표는 한마디로 "기술에 미친 삶"이라고 했다.

공고를 졸업하자마자 기술직으로 취직해 일에 빠져 살았다. 금속 도금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기계를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한 끝에 자동화에 성공해 생산량을 하루 3만개에서 30만개로 끌어올렸다. 당초 3인 기업이었던 명진화학을 매형으로부터 물려받아 이끈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일에 미쳐 살다 보니 부작용도 있었다. 삼십대 중반에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건강을 회복한 40대 중반엔 화마가 공장을 덮쳤다. 2011년 3월 발생한 첫 화재에 이어 40일 만에 또 불이 났다. 타들어가는 공장을 보며 "불 속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납품하던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2 부품은 다른 회사는 만들 수가 없었다. 재고는 21일치, 주저앉을 수 없었다. 잿더미를 치우고 새 공장을 지어 돌리는 일을 3주에 해치웠다. "진짜 한계를 넘는 게 무엇인지 이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정 대표의 말이다.

공장 설비를 전부 직접 설계해 구석구석 환하게 알고 있다는 정 대표에게 아직도 더 개발할 기술이 있느냐고 묻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기술 향상은 죽을 때까지 하는 겁니다."


■BMW 코리아 장성택 이사 "필요할때는 늦어… 나만의 무기 미리 갖춰라"

"가난이 오히려 성공의 토대가 됐습니다. 청년들을 만나면 열악한 상황을 기회로 삼으라고 말해줍니다."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자리잡은 BMW코리아드라이빙센터에서 만난 장성택 BMW 코리아 이사(54)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동네를 오가는 트럭을 보며 자동차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는 것이다.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었다. 하지만 차에 대한 애착으로 국비 지원을 받는 중앙직업훈련원(현 폴리텍Ⅱ대학) 내연기관과에 입학했다. 용돈을 받을 형편이 안돼 자동차 정비학원 야간 강사로 나갔다. 당시 나이 18세였다. 장 이사는 "제대로 가르쳐야 하니 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가난 극복=기술 습득' 공식이 유일한 해법이었던 셈이다.

또 "필요할 때 준비하면 늦는다"며 "자신만의 무기를 미리 갖출 것"을 주문했다. 1986년 현대자동차 수출정비부에 입사한 장 이사는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외국인을 만나기 위해 자전거로 매일 5㎞를 달려, 울산공항을 찾았을 정도로 공부에 열중했다. 마침 2년 뒤 현대차가 본격적으로 수출을 시작하자 영어가 가능한 엔지니어가 필요했다. 그가 낙점됐다. 영어가 그의 무기였다. 해외 지사에서 경험을 쌓고 1995년 BMW코리아에 입사했다. 2007년 BMW국제기능경진대회에 참가해 1위를 차지했고 2007년 10월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기능한국인에 선정됐다.


■아이디폰 엄현덕 대표 "달동네 꼬마를 키운 건 8할이 헝그리 정신"

아이디폰 엄현덕 대표(59)는 일터에서 삶을 일군 대표적인 기능인이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아이디폰은 엄 대표의 기술에 대한 남다른 의지, 열정의 결정판이다. 엄 대표는 서울공고 전자과 졸업 후 삼양식품, 국방과학연구소, 한국원자력연구소, 삼미전자, LG산전을 거쳤다. 엄 대표는 "똥통골로 불렸던 미아리 달동네 꼬마가 세계를 누비는 소위 '강소기업' 대표가 됐다"며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헝그리 정신"이라고 말했다.

쉽지 않은 삶이었지만 엄 대표는 좌절하지 않았다. 국방과학연구소 시절 한양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학사학위도 받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LG산전에 다닐 때는 마그네틱 카드 리더기, 신용카드 조회기 등 여덟 건의 특허를 출원해 제1대 발명왕에 선정됐다. '조직이 잘 돼야 구성원도 잘 된다'는 신념으로 헌신적으로 노력한 덕분이었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10년 넘게 몸담은 LG산전에서 퇴직한 뒤에는 동료직원 4명과 함께 아이디폰을 창업했다. 아덴만 여명작전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에서 현장 상황을 원격으로 전송한 것이 알려지면서 주목받은 휴대용 디지털 보안장비 카이샷이 아이디폰의 대표적인 제품이다. 사업가로서 언제든 새로운 시장을 찾아나설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는 엄 대표는 "헝그리 정신과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테크빌 허남경 대표 "한 우물만 파다 보니 기술 수출"

"한 우물만 파며 열심히 산 것뿐입니다." 테크빌 허남경 대표(56)가 밝힌 성공의 비결이다. 허 대표는 평생 철도 신호시스템의 자동화와 국산화에 앞장선 '기능한국인'이다. 그는 "서울도시철도 가운데 2호선과 5호선 빼고 내 손길이 닿지 않은 라인이 없다"며 "엔지니어로 평생을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국내 최초로 경부선 철도 열차집중제어장치를 프랑스로부터 도입했다. 그는 프랑스 고속철도 테제베(TGV) 개발사인 알스톰사에서 자동으로 고속철도 속도를 제어하는 기술도 우리나라에 들여왔다. 1978년 국제기능올림픽 동력제어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LS산전의 전신인 금성산전 중앙연구소와 알스톰사에서 일하면서다.

허 대표는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싶어 2001년 테크빌을 차렸다. 허 대표는 "첨단기술이 우리나라에서 가치가 있으려면 자재든 기술이든 국산화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테크빌은 2006년 프랑스로 고속철도 기술을 역수출하기까지 했다. 2001년 허 대표를 포함해 3명이었던 회사는 41명 규모로 성장했다.

후학 양성 의지도 밝혔다. 허 대표는 "올림픽에서 금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학부 4년 내내 등록금 전액을 나라에서 지원받았다"며 "이제는 (내가 국가에)기여할 때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헌트P&I 박대선 대표 "무엇이든 배우면 다 써먹는다"

헌트P&I 박대선 대표(54)는 35년간 금형 및 제조업에 종사해온 사출금형 전문가다. 공장은 경기 군포시에 있다. 2005년에 창업, 10년 만에 연매출 200억여원의 강소기업으로 일궈냈다. 경영비결은 '무엇이든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다.

박 대표는 전공분야인 사출금형뿐만 아니라 제품 조립공정, 품질관리, 공장 총괄 등 회사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했다. 이것이 창업을 할 때 든든한 토대가 됐다.

어린 시절은 배움과 거리가 멀었지만 학업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공고 1학년을 중도 포기했다. 이후 회사를 다니며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안양대학교를 졸업, 현재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박 대표는 "당장 힘든 일이라도 나중엔 다 득이 된다"며 "배움에 있어 일과 학습 모두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금형산업의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단국공고, 대림대학교 등의 교육기관과 협약을 맺고 금형 전공 졸업생들을 채용하고 있다. 직원들에게는 등록금의 50%를 장학금으로 지원해 대학 진학을 권하고 있다. 박 대표는 "헌트P&I는 전문적인 사출금형 업체를 목표로 한다"며 "앞으로 금형사출 분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페스 임철규 대표 "밤새워 제품 뜯어 기술 습득"

"성공한 이유요. 뭐 없습니다. 죽어라 일한 거죠." 경기 남양주시에 자리잡은 토페스 임철규 대표(60)의 어린 시절 꿈은 '굶지 않는 것'이었다.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꿈을 이루기 위한 절실함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국내 최초로 폐쇄회로TV(CCTV)를 개발한 임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기계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남산공업고등학교(현 리라아트고교)를 졸업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라디오를 만들어 팔 정도로 기술에 빠져 살았다.

CCTV와의 '첫 만남'도 그런 식이었다. 오리엔탈전자공업에서 과장으로 있을 당시 사무실에 설치된 작은 카메라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24시간을 화면에 담는 CCTV가 신기했던 것이다. 모든 직원이 퇴근한 후 기계를 분해하고 원리를 알아내겠다고 밤을 꼬박 새웠다.

그러한 열정이 토페스를 CCTV 국내 점유율 1위 업체로 만든 밑거름이었다. 임 대표는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6회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임 대표는 '고객과의 신뢰' 또한 강조했다.
토페스는 기기 불량이 아닐지라도 웬만하면 수리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당장의 수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객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거죠." 임 대표의 이러한 마음가짐은 30년의 역사를 가진 토페스가 '100년 기업'의 꿈을 당당히 말하는 이유이다.

김성호 최미랑 안태호 한영준 원희영 김규태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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