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도 비움도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
2015.07.20 16:53
수정 : 2015.07.20 22:23기사원문
지난 1975년 '다섯 명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렸다. 한국의 단색화를 해외에 알린 첫 전시회로 알려진 이 전시에는 한국 단색화 1세대 작가로 꼽히는 권영우(1926~2013), 박서보(84), 서승원(73), 허황(69)과 함께 이동엽(1946~2013)의 작품이 내걸렸다.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한 이 전시에는 컵의 투명성에 주목한 이동엽의 데뷔작이자 출세작 '상황'(1972년)이 출품됐다.
단색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기 이전부터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이동엽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서울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동엽 개인전이다.
이동엽은 동양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넓은 평붓으로 흰색 바탕 위에 하얀 붓질을 구도(求道)하듯 반복한다. 흰색이 주를 이루는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층위를 이루는 회색의 붓 자국이 언뜻언뜻 보일 뿐이다. 평생 전업작가로 산 그는 유채색을 사용한 아주 짧은 시기를 제외하곤 평생을 오로지 흰색과 회색만을 부여잡고 살았다. 1975년 도쿄 전시 때 미술평론가 이일(1932~1997)이 전시 서문에 썼던 것처럼 "(그에게) 흰색은 단순한 빛깔 이상의 것으로 색이기 이전에 하나의 우주"였던 셈이다. 채움도 비움도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오는 8월 23일까지 볼 수 있다. (02)720-1524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