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주 국민대 석좌교수 "압축 성장 부작용으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나와 다름'을 존중해야"

      2016.08.02 18:50   수정 : 2016.08.02 18:50기사원문
사회갈등으로 대한민국이 사분오열하고 있지만 정부는 물론 정치권, 시민사회단체조차 갈등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각에선 갈등을 부추기며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모습이다. 이에 시민사회와 경제, 종교, 정치 등 주요 분야 전문가에게 '갈등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 사회의 갈등 해소 방향과 향후 나갈 길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한국 사회의 갈등 프레임은 이제 상처에 진물이 나기 시작해 '항생제'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회복 탄력성을 완전히 잃기 전에 '항생제'는 물론 회복을 위한 '영양제'까지 맞아야 하는 수준에 직면했다.
"

적절한 갈등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갈등은 그 도를 넘어서 사회 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을 지낸 박인주 국민대 석좌교수는 "갈등이 심각해지면 사회 전체가 회복 탄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면서 사회가 회복 탄력성을 잃고 사회구조 붕괴로 이어지기 전에 사회 구성원 전체가 갈등 프레임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박인주 석좌교수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행복이 아니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사회의 갈등 프레임이 심각하다. 근본적 원인은.

▲물고기를 옮길 때 살아 있는 상태로, 즉 활어로 옮길 때는 적정량이라는 게 있다. 물고기를 너무 많이 수족관에 넣으면 움직이다 서로 부딪치고 상처를 낸다. 한국 사회도 비슷하다. 밀도가 너무 높고 또한 강대국 사이에서 낀 상태로, 이런 현상들이 한국 사회를 고도의 경쟁사회로 몰아갔다. 매일 수많은 경쟁으로 인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경쟁이 풍요가 아닌 결핍의 심리를 강화시킨다. 물고기를 옮길 때 상처가 날 수 있어 수족관에 항생제를 넣는다. 현재 한국 사회는 지나친 경쟁과 긴장, 이로 인한 사회 갈등으로 항생제를 투입할 상황에 놓였다. 사회 갈등이 심각하면 사회 회복 탄력성도 사라지게 된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갈등 프레임을 해결해야 할 때가 됐다.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 정부와 민간의 갈등도 심각하다.

▲정부의 정책을 집행할 수 없을 정도로 정부와 민간인의 갈등, 공익과 사익의 충돌 현상이 도처에 일어나고 있다. 이념갈등, 노사갈등, 계층갈등, 남녀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등을 넘어 이제 민관갈등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갈등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 상승작용을 해서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면이 있다. 민관갈등은 국가라는 체제를 유지를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사익 때문에 공익을 배제하면 무질서가 될 수밖에 없어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사드 배치 문제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타협과 협상의 절차가 생략되거나 무시되면서 논의 자체를 하지 못해 갈등을 증폭시킨 면이 없지 않다. 문제는 이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 갈등으로 인해 '앵그리 코리안'(화난 한국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무역규모가 1조달러를 돌파한 9번째 나라로 등극했다. 대단한 나라가 됐지만 이런 압축성장의 그늘이 갈등이라는 모습으로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것이다. 압축성장에 따른 치열한 경쟁에서 패배한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승리한 자도 이에 따른 피로와 스트레스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삶을 포기하는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압축성장으로 의식주는 해결됐지만 정신적 문제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 사회는 갈등지수가 높다.

▲현재 한국 사회는 심하게 말하면 '너 죽고 나 살자'는 상황이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 빨리 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아왔다. 한국 사회가 '페어플레이' 원칙이 없는 사회가 되면서 승자의 아량과 포용도 사라졌다. 이로 인해 사회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한국은 인종갈등도 없고 종교갈등도 심각하지 않은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사회갈등지수 2~4위에 해당한다. 계층갈등이 심화되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고착화되면 범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상생의 사회가 돼야 한다. 나만 잘 먹고 잘살고 상대방은 굶어도 좋다는 사회는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사회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기관이나 단체도 없어 보인다.

▲사실 전면에 나서야 할 시민사회단체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보수시민단체와 진보시민단체가 한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신년 하례회도 따로따로 한다. 한 2000년부터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도통합론자는 설 자리가 없는 셈이다. 서로가 다른 것을 용납 못하는 사회, 중도가 용납 안 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사회통합수석 때 사회통합위원회와 구존동이(求存同異.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한다는 뜻)를 화두로 두고 전국을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갈등이 있으면 일단 만나야 한다. 다른 점이 뭔지 확인하고, 무엇을 같이 할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가치의 차이를 토론을 통해 타협을 할 수 있고, 절충도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이후에 민주주의에 따른 다수결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보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면 상대방과 의견을 나눌 수도 있고 설득도 할 수 있다. 사드 문제에서 보듯이 한국 사회는 공론의 장이 없다. 민주주의는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니 토론도 하지 않는 것이다. 토론을 통해 모든 국민에게 널리 정보가 공유되고, 이를 통해 다수결이라는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이념에 함몰되어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수결까지 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대화가, 타협이 없는 사회가 바로 경직된 사회다. 부드러운 사회, 따뜻한 사회로 가야 한다.

―사회갈등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사회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단기처방과 장기처방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단기적 처방은 법적·제도적 장치 통해 해결하는 방법으로 '갈등조정기본법'(가칭)을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유사한 법이 있다. 이해 당사자들이 전문가들과 논의해 해법을 도출하고, 이에 대해선 따르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10~20년을 내다보고 교육과 사회운동으로 해결해야 한다.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대학교 평생교육 프로그램까지 전 과정에 걸쳐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이해하고, 남을 존중하며, 남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다름을 틀린 것으로 이해하는 사회다.
다른 것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운동이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선동적 애국자와 책임적 애국자가 있는데 지금은 책임적 애국자가 필요한 시기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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