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꿈꾸던 삶을 살고 있나요

      2017.03.02 20:00   수정 : 2017.03.02 22:33기사원문

#1. 바다를 항해하고 싶었던 한 그루의 나무는 문득 정신 차려보니 의자가 돼 있었다. "내가 원한 삶은 이게 아니야! 남들은 늦었다 하더라도, 난 바다를 향해 나아가겠어!" 의자는 힘을 다해 다리를 쭉 늘려 물살을 젓는 노를 만들었다. 여전히 항해를 하기엔 역부족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2. 양은 자신이 양으로 태어난 것이 싫었다. 맹수가 되고 싶었던 양은 기어코 표범 가죽을 뒤집어썼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아닌 '늑대의 탈을 쓴 양'이 되었다.


안규철 작가(62.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사진)의 개인전 '당신만을 위한 말(Words Just for You)'은 이와 같이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상상들을 실제로 구현한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전시다.

일상의 사물과 언어를 주요 매체로 사용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해온 안 작가는 "오도가도 못하는 것이 결국 우리 인생이 처한 상황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갈등을 사물을 통해 보여주고 관객 스스로가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그야말로 기묘한 형태의 작품들을 통해 질문을 하고 관객이 답을 직접 찾기를 바라는 안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또한 관객들이 잃어버렸던 꿈과 불가능을 넘어선 상상을 해보기를 바랐다.

"만약에 의자가 의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면요? 배가 되길 꿈꿨다면 다리가 자라서 노가 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양이 맹수가 되고 싶어 실제적으로 행동한 모습,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이상한 형태가 된 모든 것, 나름 자신의 궤도를 이탈하려 하는 것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당신에게 궤도 바깥쪽은 어떤 의미인가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던 것이 이번 전시의 콘셉트"라고 안 작가는 설명했다.

서울대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안 작가는 졸업 후 언론의 암흑기였던 1980년대에 7년간 미술잡지 '계간미술' 기자로 활동한 뒤 독일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런 배경 덕분인지 그는 스스로를 '미술과 글 사이의 중계자'로 자처했다. 사유와 관념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덕에 그는 '개념미술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나를 개념미술가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절반만 맞다"며 "사유의 과정이 출발점이 되지만 그걸 형태로 구현하는 과정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보이는 '두 대의 자전거'는 인생의 모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길을 지나치다 종종 볼 수 있을 듯한 자전거, 가까이서 보면 뭔가 좀 다르다. 안 작가는 두 대의 자전거를 반으로 갈라 한 대는 자전거 손잡이 부분끼리 용접을 통해 결합시키고, 안장과 뒷부분끼리 결합시킨 또 다른 한 대의 자전거를 만들었다. 이 두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절대 나아갈 수 없고 어떤 것은 심지어 제자리에 서있을 수조차 없어 벽에 기댈 뿐이다.

안 작가는 "이 작품은 '세월호 사건' 직후에 제작한 작품이었다"며 "빠른 성장을 통해 성공하고, 잘살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우리의 믿음이 왜 낭패를 맛보게 되었는지, 우리의 진보는 어떻게 헛걸음을 하게 된 것인지 고민하던 끝에 만들게 됐다"고 했다. 성공을 지향한 끝에 실패를 겪었으니, 오히려 역설적으로 실패를 지향하게 되면 오히려 이를 피해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됐다는 것이다.

'두 개의 자전거'를 제외하고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24점의 작품은 모두 올해 제작된 신작이다. 이 작품들은 초기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오브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원, 구, 직선, 나선 구조 등 좀 더 근원적 형태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눈으로 보는 미술을 넘어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의 주제와 같은 이름의 '당신을 위한 말'은 진회색 펠트로 만들어진 부조 작품인데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대나무 숲처럼 관객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는 벽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안 작가는 "누구의 이야기도 다 들어줄 수 있는 '커다란 귀'와 같은 오브제를 상상했다"며 "누구든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방음 스펀지로 꽉 차 있는 작품 앞에서 각자 누군가의 '침묵의 소리'를 듣고 '자신만의 말'을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31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리리.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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