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 방사청 원가검증팀장 "판사 전문이력 살려 국가에 기여"
2017.03.07 19:18
수정 : 2017.03.08 08:13기사원문
아마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더라면 내년엔 부장판사가 됐을 것이다. 승진 경로대로 움직이다가 길게는 십수년 후 퇴직해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로펌에 가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듯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그의 성공을 흐뭇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만난 정재민 전 의정부지법 판사(40.사시 42회.사진). 그는 지난달 만 11년 판사 생활을 접고 일반직 공무원 채용 공모를 통해 방위사업청 4급 서기관 자리인 원가검증팀장으로 변신했다. 정부가 계약하는 방산무기.물자들에 원가 부풀리기가 없는지 검증,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일이다. 주로 단일사업 규모가 수백억원에서 조단위까지 있는 대규모 계약건들이 원가검증대에 올려진다. 현재 팀내 5개 검증반이 있으며 총 26명의 팀원이 그와 손발을 맞추고 있다.
"늘 공익과 관련된 일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국방부에서 법무관으로 2년, 판사 임용 후 외교부에서 2년간 공직을 경험하면서 행정부가 가진 정책 영향력에 매력을 느꼈죠. 국방부에서 법무관 시절 용산기지 이전 등의 업무를 처리할 때였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이 즐겁고 신나 매일 밤 11시, 12시까지 일했던 기억이 마음에 남아있었죠."
그는 현직 판사 시절 독도 관련 국제법정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출간해 이목을 끌었다. 그 인연으로 2년간 외교부 국제법률국에서 독도법률자문관으로 활동했다. 2014년부터는 구 유고 유엔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해 판사로서는 드물게 다양한 국제업무 경험을 쌓았다. 같은 해엔 후속으로 낸 장편 '보헤미안 랩소디'로 1억 고료 세계문학상을 거머쥐는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뽐내왔다.
사실 이번 방사청행은 응원보다 만류가 많았던 선택이었다. 판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아쉬워하거나 1년만 더 버텨 부장판사가 되면 국장급으로 채용될 기회를 얻지 않겠느냐는 현실적 조언들이었다.
정 팀장은 단호했다. "1년 뒤에 나왔더라면 남들이 말하는 좀 더 유리한 위치에서 행정부에 왔을지 모르죠.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국장 자리 차지하면 뭐 하겠습니까. 제가 여기에 온 건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여기 우리 팀원들과 함께 일하는데 너무 재미있습니다."
정 팀장은 왜 방사청행을 고집했는지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내 이력이 특이한 만큼 전문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 내 가치를 높이고 내 인생을 덜 허무하게 만든다는 게 방사청행의 중요한 이유다. 돈벌이를 위해 잠시 경력을 쌓으려고 방사청 가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좋다는 일과 중매결혼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과 연애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의 새로운 선택에 다시 한번 기대가 모아진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