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계약시 받는 '1억원 보증’ 공제 증서의 실체
2017.08.13 09:00
수정 : 2017.08.13 09:00기사원문
전·월세 등 부동산 거래를 할 때 보통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계약을 하게 됩니다. 직거래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개 안전한 거래를 위해 중개업소를 이용하게 됩니다. 계약 체결이 완료될 때쯤이면 계약서와 함께 예외 없이 받게 되는 문서가 하나 있습니다.
증서를 받는 순간 '내 전세보증금이 사기를 당해도 1억은 보상 받을 수 있구나'하고 안심하게 됩니다. 내 피 같은 돈을 지켜 줄 안전장치인 셈이죠.
■ 공제 증서란 무엇인가?
중개 거래간 사고 발생 시 중개업자가 피해금액의 일부를 보상해야하지만 금전적 능력이 없거나 고의적으로 피해보상을 회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피해 금액에 대한 보상을 협회에서 보증한다는 의미의 증서입니다. 즉 대신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현행법은 중개업자에게 의무적으로 보험(공제)에 가입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제24조(손해배상책임의 보장)에 따르면 법인인 개업공인중개사는 2억원이상, 법인이 아닌 개업공인중개사 1억원이상 한도의 공제에 가입해야 합니다. 가입 단위 1년입니다.
1억원 초과하는 공제 가입도 가능하나 수수료 부담에 법에 명시된 최소 한도(1억원) 내 가입으로 그치는 상황입니다.
■ 부동산 거래 건당 1억원이 아닌 거래 건수 관계없이 한해 1억원
부동산 거래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사고가 나면 적어도 1억은 보상받겠구나'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공제에 대해 중개업자의 자세한 설명이 없다보니 생겨난 문제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릅니다. 공제 증서의 약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공제 약관 제8조, 공제의 손해배상책임 한도 및 범위>
①(중략)..공제기간중 발생한 모든 중개사고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중개 의뢰인들의 수 또는 중개계약의 건수나 그 손해액에 관계없이 손해를 입은 각 중개 의뢰인들이 협회로부터 보상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의 총 합계액은 공제증서에 기재된 공제 한도내에서 배상책임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계약 건당 1억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거래 건수·계약자 수와 관계없이 한 해 1억원인 것이죠.
예를 들어, 중개의뢰인 10명이 중개업자 A씨에게 각 1억원의 부동산 사기를 당했습니다. 각 사기 피해자들은 1억 한도의 공제증서를 업자에게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각각 1억 한도에서 배상 받는 것이 아닌 총 1억을 10명이 나눠 배상을 받게 됩니다. 단순 계산하면 1명이 받는 배상액은 1000만원인 셈이죠.
만에 하나 A씨가 이미 다른 중개사고로 1억원의 지급한도를 초과했다면 이마저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즉, 같은 해 다수의 사고에 연루된 중개업소라면 한 푼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2015년 12월 부천과 인천 각각 70억원, 40억원 규모의 부동산 사기 사건에서 약 120여명 피해자들이 중개사협회로부터 받은 공제 금액은 수백만원에 불과했습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공제 약관 제8조, 공제의 손해배상책임 한도 및 범위>
② 협회가 보상하는 손해 범위는 공제에 가입한 회원이 부동산중개행위를 함에 있어서 거래당사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발생하게 한 금액 중 공제가입자(부동산중개업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합니다.
피해금액이 공제금액 한도이내고 피해자가 1명이라고 해서 100% 배상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중개거래시 발생된 중개업자의 과실에 대해서만 배상금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거래는 공인중개사를 통하지만 결국 거래의 주체는 본인이므로 사고가능성에 대해서 주의의무도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재판을 통하더라도 피해자의 과실을 감안해 실제 입은 피해금액 중 일부만 배상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중개업자의 잘못으로 5000만원의 손해를 본 중개의뢰인이 손해배상청구 한 결과 중개업자 70%, 중개의뢰인 30% 과실이 인정됐다면 1500만원을 공제하고 3500만원이 배상금액으로 인정됩니다.
또 다른 예로, 법원에서 1억4000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았다 손 치더라도 공제금액 한도가 1억원이라면 나머지 4000만원에 대해선 실제 배상받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중개업자의 개인 자력이 불충분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광석 로티스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보통의 중개업자가 중개 사고를 여러 건 발생시키지 않는다. 평생 한 번도 사고를 안치는 업자들이 많다"며 "전체 중개업자가 1만 명쯤 된다 치면 한해 여러 건 사고를 발생시키는 업자는 5명 정도다. 5명 보장하자고 거래 건당 공제를 하는 건 무리다"고 말했습니다.
거래 건별 보장은 한명의 중개업자가 한 해(공제기간)에 다수의 중개사고 발생 시 연루된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구조인데 실상 그런 중개업자는 극소수다 보니 혜택을 받을 피해자가 적다는 설명입니다.
최 변호사는 "부동산을 계약하는 다수가 혜택을 보기 위해선 차라리 거래 건별 보장보단 현재 1억원인 최소 보장 한도를 올리는 것이 좋다. 최소 공제 한도가 2억으로 상향되면 웬만한 거래는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2012년 2월 당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거래 건 별로 1억원 이상을 보장하는 공제 등에 가입 의무화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 신고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중개업체들 반발해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yongyong@fnnews.com 용환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