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발생 1분안에 재난문자 ‘띵동’..대피소·행동요령 안내는 없어 혼란

      2017.11.26 17:30   수정 : 2017.11.26 22:42기사원문
2016년 9월 12일 저녁 7시44분 경북 경주의 땅이 흔들렸다. 48분 후 규모 5.8의 본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이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 지진이었다.

당시 진동은 서울, 강원, 제주 등 전국에서 느껴질 만큼 강력했다. 지진 발생 직후 전국의 휴대폰 통화, 문자 심지어 카카오톡 메신저에도 장애가 발생할 만큼 국민의 두려움이 컸다.
지난해 경주 지진은 한반도의 지진 대처능력 수준을 여실히 보여줬고, 더 이상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1년2개월이 지난 11월 15일 경북 포항에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 5.4의 지진이 일어났다. 경주에서 포항으로 이어진 1년간 대한민국의 지진대비책을 점검해 본다.


■재난문자 빨라지고 대피지시 달라져

26일 주요 인터넷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종합해보면 올해 발생한 포항지진에서 국민은 몰라보게 빨라진 지진 재난문자에 대한 칭찬이 급증했다.

지난해 경주 지진 당시 가장 많은 국민의 불만을 낳은 것이 긴급재난문자 늑장 발송이었다. 경주지역은 지진 발생 후 최대 8분, 경북지역은 최대 14분 뒤 재난문자가 발송됐다. 경보 기능이 상실된 의미 없는 문자였던 셈이다.

반면 지난 15일 포항지진이 발생했을 때 긴급재난문자는 지진 발생 불과 1분 후에 국민들 스마트폰에 전달됐다. 불과 1년 새 몰라보게 달라진 변화였다. 심지어 포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지진보다 재난문자가 빨리 도착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지진 분석시간이 짧아지고 문자 송출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경주 지진 당시 26초가량 걸렸던 조기경보가 7초나 앞당겨 19초에 이뤄졌다. 행정안전부와 기상청으로 이원화했던 긴급재난문자(CBS) 발송체계를 기상청으로 통합해 문자 전송시간이 단축됐다.

지진에도 '가만히 있으라'던 대처 방법도 달라져 국민을 안심할 수 있게 한 요인으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경주에서 1차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88개 학교 중 47.7%인 42곳이 대피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부산의 한 고등학교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반면 올해 포항지진 당시 외벽이 무너진 동영상으로 주목받았던 포항 한동대학교는 침착한 대피로 다시 전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한동대는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지진 매뉴얼을 만들고 네 차례에 걸쳐 대피훈련을 했다. 반복된 훈련 덕에 신속하게 대피, 결과적으로 경상자 2명 외에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경주 지역 학교들도 지난해 경험을 바탕으로 일사불란하게 대피했다. 지난 1일 전국 지자체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전국의 학교, 어린이집, 유치원까지 참여해 실시된 지진 대피훈련이 도움이 됐다.

■대피는 빨랐지만 대피소는 없다

그러나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경고하는 두 번의 지진을 겪으면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긴급재난문자와 대피명령은 빨랐지만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지진 직후 시민들은 건물이나 아파트 밖으로 긴급히 뛰쳐나오긴 했지만 삼삼오오 모여 상황을 지켜봤을 뿐 대피소를 찾는 다음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작 시민들은 어디로 피해야 할지, 대피요령은 무엇인지 안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요 인터넷 게시판에는 '지진재난방송을 2시간 동안 들었지만 지진대피소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 '지진 안내문자 후 행동요령도 알려주면 좋겠다' 등 단순 경보보다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현실적 요구가 이어졌다.

경주에 사는 한 네티즌은 "지난해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지진 때 시청에서 나오는 방송은 알아듣기 어렵고 거리엔 대피소로 안내하는 사람들조차 못 봤다. 우리는 그냥 길거리에 나와 있기만 했다"며 경주 지진 1년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은 지진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경주지진이 재난문자가 이슈였다면 포항지진은 내진설계였다. 포항의 한 필로티 구조 건물의 1층 기둥이 부서져 아찔하게 버티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를 방증하듯 대형 포털사이트에는 '우리집 내진설계 간편조회' 서비스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해당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우리나라는 1988년부터 건축물에 내진설계 의무 규정을 도입하고 30년 동안 꾸준히 기준이 강화됐지만 내진율은 여전히 20.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는 내진설계 의무 대상이 아니었던 5층 이하의 건물이 많고, 3층 이상 건물이 의무에 포함한 건 몇 년 안 되기 때문에 비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물 상당수가 지진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내달 1일부터 신축하는 모든 주택은 층수.연면적에 상관없이 내진설계가 적용돼야 할 정도로 기준이 강화됐지만 지진에 무방비 상태인 80% 건물의 내진 보강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지진보험상품 등 대책도 마련해야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지진을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보험상품은 미미한 실정이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지진 전용 보험상품은 없다. 다만 정부 정책성 보험인 풍수해보험을 비롯, 일반 화재보험에 특약 형태로 부분적 보장되는 보험이 있다.

풍수해보험은 정부가 보험료의 절반 이상을 보조해 주어 보험료가 저렴하지만 가입률은 저조하다. 풍수해보험 상품은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 주민에게 권유해 가입하는 단체상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일반인은 풍수해 위험이 적다보니 가입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한몫한다. 화재보험 지진특약 역시 보상 범위가 좁고 한도가 낮다 보니 가입자가 미미하다. 이마저도 한 손해보험사는 경주 지진 이후 슬그머니 특약 판매를 중지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내 지진 연구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에 따르면 현재 국내 지진학자는 박사급을 기준으로 30명 정도에 불과하다.
지진 연구나 대처에 신속한 대응책을 내놓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yongyong@fnnews.com 용환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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