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인구감소지역을 가다 "2040년 140개 지방 소멸"... '농촌형압축도시' 모델이 대안

      2018.02.12 15:49   수정 : 2018.02.12 15:49기사원문



【전남=황태종기자】“이러다간 정말 우리 마을이 10년 후에는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갈두리 안동마을 이장인 정모씨(64)는 9일 마을을 둘러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연일 계속됐던 한파가 물러가고 햇살 따사로운 오후인데도 마을엔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오고가는 사람이 없이 텅 비어 있고, 마을 앞에 펼쳐있는 드넓은 논은 추수가 끝난 모습 그대로 남아 황량함을 더했다.

마을에는 10여채의 빈 집이 있는데 집집마다 문이 잠겨 있고 적막해 어느 집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지 쉽게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인근 마을인 장흥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마을은 간척지에 위치해 한때 90여세대, 200여명이 큰 농사를 짓던 부촌이었지만 지금은 50세대, 60여명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나마 50대 후반 남자 1명, 60대 초반의 부부 여섯쌍 12명, 나머지 50여명은 모두 65세 이상 독거노인들이다.

정씨는 “산업화의 여파로 1970년대 말부터 20~30대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 서울, 부산, 순천 등으로 빠져나가는데 이주해오는 사람은 없어 주민 수가 줄더니 급기야 15년 전부터는 아예 청소년이 사라졌고 이제는 노인들만 남았다”고 말했다.

■2040년 고령인구 비율 40%육박
전남지역 농촌이 인구소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청장년들이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나는데 마을로 이주해 온 주민은 없고, 저출산으로 출생아는 줄고 있는 반면 고령화는 심화되면서 인구감소에 이어 인구소멸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전남에서는 7100명의 20대 청년들이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서울이나 경기 등으로 순유출됐다.

전남의 출생아 수는 지난 1995년 2만8168명이었으나 2017년 1만2532명으로 20여년 동안 절반 이상 줄었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1.5%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령화율 20% 이상의 초고령지역으로 진입한 상태다. 특히 농촌이 산재한 면 지역의 경우 대부분 30%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이와 관련해 광주전남연구원 송태갑 연구위원은 "오는 2040년 전남 297개 읍면동의 33%인 98개가, 2040년 이후에는 47%인 140개가 지방소멸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인구변화율, 가임여성변화율, 고령화율 등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해 지방소멸 가능성을 분석한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통한 인구절벽 해소방안'이라는 논문을 통해서다.

논문에 따르면 2040년까지 가임여성은 10% 줄어들고 65세 고령인구 비율은 무려 39.9%에 달한다.

■지자체 "백약이 무효"
이처럼 위기감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다양한 시책을 내놓고 있다.

전남도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 전국 최초로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장흥군은 결혼 독려를 위해 지난해 11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결혼장려금 5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노인복지시책도 잇따라 전남도는 경로당 공동작업장 운영을 통해 노인 일자리를 마련하는 한편 농·어촌 면단위에 공중목욕장을 건립하고 있다. 고흥군은 65세 이상 독거노인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어르신 공동생활관' 50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지방자치단체의 여러 시책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인구절벽, 지방소멸 등 인구문제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 없이 백화점 나열식의 시혜성 사업의 성격이 짙다 보니 성과도 미미하고 일회성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출산·고령화라는 국가정책프레임을 탈피해 청년층 등 생산가능인구 확대에 초점을 맞춘 인구정책 등 교육-복지-노동 등 선순환 사회구조에 기반한 인구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도시 인구감소로 인한 저밀도 심화 등의 문제 해결방안으로 최근 외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압축형 도시정책'을 우리 농촌지역에도 서둘러 도입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압축형 도시정책은 도시공간 구조를 집약화하고 공공시설을 재배치하듯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추진 중인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활용해 거점지구를 형성하고 인근 배후마을들과 연계된 생활권을 형성하는 '농촌형압축도시'를 말한다.

광주전남연구원 조상필 도시기반연구실장은 "전남 농촌지역은 지속적인 인구감소 및 전국 최고의 고령화율로 인해 농촌형 압축도시가 시급해 여러차례 시범사업을 추진했지만, 예산이 없어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 부처별로 나눠있는 업무를 통합해 서둘러 시행하고 지역특색에 맞는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주여건, 공공서비스 질 높여야
농촌형 압축도시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인구유입과 함께 안정된 일자리와 정주여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교육, 의료, 문화, 복지 등 정주여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읍·면 중심지를 거점지구로 설정하고 중심지 기능분석을 실시해 부족한 기능을 강화하는 등 정주여건과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신축이 아닌 기존 보건소나 문화복지센터 등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도록 정비하면서 거점지구에 가능한 필요시설을 집적시켜 예산도 아끼고 사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지역특성과 산업구조, 노동시장, 인력수급 등을 고려한 안정된 일자리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다.

광주전남연구원 김대성 연구위원은 "전남은 친환경 농산물 생산 전국 1위, 수산물 생산 전국 1위 등 농수산축산물 생산지역이지만 가공·유통·판매가 없어 그동안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만큼 이를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가나 지자체에서 투자해 농수축산업의 6차 산업화를 집중 추진하면 청장년들이 농수축산물의 가공·유통·판매 분야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어 농촌에 정주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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