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방치된 '日 대륙침략의 전초기지'

      2018.03.01 06:00   수정 : 2018.03.01 06:00기사원문
*'다크 헤리티지'(Dark Heritage) 또는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는 '부정적 문화유산'을 말한다. '다크 헤리티지를 찾아서'는 주로 일제강점기 시대나 군부독재 시절 참혹한 참상이 벌어졌거나 그들의 통치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된 장소를 찾아가 과거와 오늘을 이야기한다. - 기자 말



‘문화콘텐츠 허브’로 발돋음 중인 서울 마포구 상암DMC 인근엔 ‘쌍굴’이라는 터널이 있다.

이 쌍굴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돼 길이 약 1km에 상부와 하부에 각각 터널이 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부의 터널이 직선이라면 하부 터널은 곡선으로 상호 교차해 지나간다.


현재 하부 터널은 철판으로 입구를 막아놨으며 터널 내에는 철로가 깔려 있다. 이와 달리 상부 터널은 철로를 걷어 내 1차선 도로가 깔려 있다. 고양시 화전에서 수색으로 가는 길이 교통 체증으로 밀릴 때면 아는 사람만이 이용하는 지름길이다.

■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 ‘수색 조차장’
일제강점기 당시, 쌍굴 위 아래에는 수색 조차장(현 수색 철도 기지창)과 일본군 육군 창고가 있었다. 수색 조차장에 대한 기록은 1940년 1월 26일 ‘동아일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문은 ‘3대 조차장 건설’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기사는 경성 수색·부산·평양 근교에 대규모 조차장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수색 조차장은 당시 돈으로 1300만원의 예산이 집행됐고, 이미 지반공사를 마친 상태로 완공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보도했다. 나아가 일제는 용산~수색 간 철로를 하나 더 놓기도 했다.

수색 조차장의 전체적인 구조를 볼 수 있는 자료는 의왕 철도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다. ‘수색조차장배선실시약도’를 살펴보면 조차장의 선로 총 연장 길이는 130km에 400개의 분기기 그리고 20개의 교량용 철골이 쓰였다고 적혀 있다. 서울역을 기점으로 충남 조치원역까지 가는 경부선의 선로 길이가 129.3km이니 수색 조차장 내에 놓인 선로의 길이만 해도 실로 어마어마했다.

조차장 내에는 기관구, 기차고 등 철도 운송 산업을 필요한 시설이 모두 구성됐다. 거대한 규모만큼 종사하는 직원도 많았을 터이니 수색역 인근에 건설된 철도관사도 차츰 늘어만 갔다.


이 배선도에서 쌍굴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사진2’에서 빗금 친 부분으로서 모두 ‘성산(城山) 수신소’(서울 방향)를 출발해 조차장을 크게 돌아 터널에서 상호 교차하여 상부선은 육군창고로, 하부선은 ‘능화(陵花) 수신소’를 거쳐 나아가 평양으로 향한다. 이 쌍굴은 수색 철도 조차장과 육군 창고를 연결하는 중간 보급로였다.

이 무렵 신의주와 경성을 거쳐 부산을 잇는 한반도 종단선이 복선화됐다. 또 동경성역(현 청량리역)과 경주역까지 잊는 중앙선이 완전 개통을 앞둔 시점과 맞물려 전체적인 물동량을 맞추기 위해 대규모 조차장을 건설하게 됐다.

그보다 일제가 3대 조차장를 건설하려는 더 큰 이유는 1937년 7월 7일 일제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 때문이다. 종합해 볼 때 일제는 육군 창고에서 피복, 탄약, 식량 등을 포함한 각종 보급품을 조달했으며 마포구 당인리 화력발전소에서 무연탄을 수송하고 수색 조차장에서 평양~신의주~만주로 달리는 철도를 통해 보급로를 통합 관리했다. 이로써 3박자가 딱딱 들어맞는다.

용산역과 용산 일본군 기지가 일제의 조선 침략 전초기지였다면, 수색 조차장과 고양 육군 창고는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1945년 일제의 무조건적인 항복에 의해 끝내 완공되지 못했다.

덧붙여 인근 화전동엔 화전 공동묘지가 있다. 대부분 무연고 묘가 가득하다. 당시 한국·중국·러시아 등에서 끌려온 강제 징용자들이 조차장과 철도관사, 육군 창고, 쌍굴 등의 군사 시설에 투입됐고,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 미나리 자라고 미꾸라지 잡던 쌍굴
지난 20일, 기자는 덕은동 버스 승강장 ‘쌍굴 입구’에서 내렸다. 눈앞에는 ‘쌍굴 옻닭’이라는 식당 간판이 보였다. 이미 쌍굴은 이 동네의 대표적 지명이 돼 있었다.

쌍굴의 상부 터널은 현재 차도로 사용된다. 하부 터널은 철판으로 입구를 막아놨지만 성인 한 명이 지나갈 만큼의 공간은 있었다. 하부 터널에 들어가 봤다. 찬 기운이 엄습해 온몸을 감쌌고 실내는 캄캄했다. 철로가 깔린 바닥은 물이 고여 얼었고 동물의 사체와 난잡한 쓰레기가 있었다. 약 100m를 걸어 들어가 보니 철로가 물에 잠겨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벽을 뚫고 나온 용출수가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얼어 있었다.

발길을 돌려 터널 반대편으로 가봤다. 쌍굴은 인근 군부대 방향으로 향했다. 해당 위치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창고가 있었고 6.25 전쟁 후에는 미군이 차지했다가 현재는 육군 군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쌍굴에 대해 인근 주민의 증언은 2014년 한 지역 신문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한 주민은 ‘왜정 때 만든 쌍굴인데, 보급 기차가 몇 번 다니는 것을 봤다”고 밝혔다. 또 다른 주민은 ‘굴 안에 작은 구멍이 두 군데가 있는데 거기서 계속 물이 흘러나와 여름에는 미나리가 많이 자라고 미꾸라지를 잡아먹기도 했다’고 전했다.




■ 광명 ‘광명동굴’·정선 '삼탄아트마인' 그리고 고양 '쌍굴'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동굴. 2011년 광명시는 폐광이던 가학광산을 사들여 수차례의 안전 보수작업과 시설물 설치작업을 거쳐 새로운 관광 명소로 재탄생시켰다.

지난해까지 광명동굴의 누적 관광객은 360만여 명을 기록했고 500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지역 경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원도 정선시 ‘삼탄아트마인’은 어떤가. 2001년 10월 폐광된 삼척탄좌 시설을 창조적인 문화예술단지로 탈바꿈 시켰다.

쌍굴은 터널 길이 약 1km에 역사적 배경을 갖춘 관광자원이다. 이를 활용해 역사 문화 시설과 터널 안에 샘솟는 용출수를 이용한 자연생태 시설 등으로 꾸밀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덕은-화전 지역은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깝지만 고양시의 다른 곳에 비해서는 한참 소외된 지역이다.

변변한 문화 시설조차 없는 이곳에 쌍굴을 자연생태·역사문화 복합시설로 개발한다면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쌍굴의 남쪽 입구는 수색 철도기지창과 인접하고, 북쪽은 군부대가 자리해 지리적·행정적 한계는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럼에도 역사적 가치가 남아있는 자원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지자체가 쓸모를 다한 오래된 시설을 가지고 새로운 관광 상품으로 꾸민 사례가 이미 적지 않다.
이제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다.

같이 볼 기사 ▶▶ [다크 헤리티지를 찾아서] 일제강점기의 타운하우스 '철도 관사'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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