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에 한숨쉬던 산업계, '유류세 인하'에 숨통 트일까?
2018.10.14 15:34
수정 : 2018.10.14 17:06기사원문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제호조로 인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 이란 제재 등에 따른 공급차질 우려가 겹치면서 이르면 올 연말 내에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유가 상승은 기업의 비용부담은 물론 가계의 소비여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유업계도 정부의 한시적 유류세 인하 검토 발표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루하루 치솟는 국제유가에 더해 전체 가격에서 절반 이상(휘발유 기준 53%)의 비중을 차지하는 세금(유류세+부가가치세) 부담 탓에 급감할 수 있는 판매량을 그나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4년래 최고치' 찍은 국제유가…한숨쉬던 산업계
1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12일 두바이유는 배럴당 79.36달러를 기록했다. 전날 배럴당 80.66달러를 기록했던 미국 증시 급락 등에 따라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꾸준히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올 연말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김희진 연구원은 "올 들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1%, 브렌트유는 24.3% 올랐다"며 "내달 4일 미국의 대(對)이란 석유부문 제재가 임박했고, 베네수엘라 구조적 감산,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여유 생산능력 부족, 세계수요 견조 등이 복합적으로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휘발유·경유가격도 연일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고공 행진하고 있다. 10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된 보통 휘발유 가격은 전주보다 리터(L)당 15.4원 오른 1674.9원으로 집계됐다. 3년 10개월래 최고가이며, 1년 9개월 만에 최대 주간 상승폭이다. 경유도 16.5원 급등한 1477.9원을 기록했다.
유가가 이렇게 급등하면서 기업의 부담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연료비에 민감한 항공·해운업계가 우선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일례로 대한항공은 한 해 연료로 3300만 배러를 소비한다. 유가가 1달러 오르면 연간 3300만 달러의 손실을 본다. 이 회사는 올해 유가를 배럴당 60달러 선에 맞춰 계획을 짰다.
국내 화학업체들 역시 국제유가 상승에 직격탄을 맞는다. 유가가 오르면 원유에서 뽑아낸 나프타 등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제품 스프레드(최종 제품과 원료의 가격차이)가 줄어 수익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실제 올 하반기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고유가는 한국 경제 성장률 전체에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내년 경제성장률을 2.6%로 올해보다 더 낮춰잡은 현대경제연구원은 그 이유 중 하나로 고유가를 꼽았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96%, 소비는 0.81%, 투자는 7.56% 내려간다는게 이 연구원의 분석이다.
특히 최근처럼 고용지표가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유가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가가 상승하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고, 이렇게 되면 가계의 소비가 줄어 기업의 매출이 떨어지는 연쇄 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기업으로선 고용을 늘릴 여유가 없어진다.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은 "유가 상승은 당장 근원물가(식료품과 에너지 물가를 제외한 생산자물가지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소비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이와 함께 기업의 생산비용을 높여 공급과 수요를 동시에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소비증가 기대…원상회복 시점이 관건"
정부가 한시적 유류세 인하를 발표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동연 부총리가 "유가가 (배럴당) 80불을 넘었기 때문에 특히 영세소상공인, 중소기업, 서민에 압박이 될 수 있다"며 "유류세 인하를 통해 어려움을 해소해주고 가처분 소득을 조금 늘려 경제 활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 그대로다.
정유업계는 정부의 이번 발표에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고, 국내 휘발유 가격이 15주 연속 상승하는 상황에서 유류세가 인하된다면 국민 부담 경감이 될테니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업계도 소비증가를 기대할 수 있어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한시적이기 때문에 원상회복 시점에서의 상황이 중요한데 유가가 지속 상승하는 상황이라면 그 충격은 더 클 수 있다"며 "2008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 10%인하했을 당시엔 국제유가가 20~30달러까지 떨어져 부담이 없었지만, 지금은 원유수급이 타이트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휘발유·경유의 유류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 주행세(지방세), 교육세로 구성된다. LPG부탄은 개별소비세, 교육세다. 휘발유 1674.9원 중 유류세와 부가가치세를 합한 세금은 898.6원으로 전체의 약 53%를 차지한다. 경유 1477.9원 중 세금은 663.6원으로 그 비중이 45%가량이다.
유류세는 경기조절·가격안정·수급조정 등에 필요한 경우 기본세율의 30% 범위에서 시행령으로 탄력세율 조정이 가능하다.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인 2000년 3월2일부터 약 2개월간 유류세(휘발유 5%, 경유 12%)를 인하했고, 2008년 3월10일부터 약 10개월 간 유류세를 10% 인하한 바 있다.
한편, 정부가 유류세를 10% 인하하면 휘발유는 리터당 82원, 경유는 57원, LPG·부탄은 21원이 각각 인하된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