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곡가’ 윤일상, 태도가 예술가를 만든다!

      2019.09.18 16:20   수정 : 2019.09.18 16:20기사원문

어떤 일이든 조금만 방향을 돌리면 새로운 길이 펼쳐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 선 가수에게서 조금만 시선을 틀면 또 다른 이들이 존재한다.

작사가 혹은 작곡가, 즉 송라이터가 있다. 그리고 명곡의 탄생은 송라이터로부터 시작된다.
무대 뒤, 또 다른 무대에는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그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편집자 주>

현재 국내 가요계에 독특한 신조어가 생겼다. ‘온라인 탑골공원’, ‘탑골가요’, ‘인기가요 탑골공원’ 등 90년대 음악을 담은 콘텐츠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각종 SNS 채널을 통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콘텐츠와 음악 취향이 맞물리며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과거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천재 작곡가’라 불리는 윤일상이다. 윤일상 작곡가는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1990년대부터 2019년까지 ‘히트 작곡가’, ‘천재 작곡가’의 명목을 이어오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최근 윤일상 작곡가를 서울 서초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가요계의 흐름을 비롯해 작사, 작곡 이야기를 전했다.


윤일상 작곡가가 데뷔한 이후 그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인기 가수들이 없다. 그리고 현재 ‘온라인 탑골 공원’에도 그의 곡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동시에 과거 가수들을 추억하는 SNS 콘텐츠, 프로그램 등이 생기고 활동을 중단한 그룹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며 대중과 만나고 있다. 그렇다면 윤일상 작곡가에게 그 시절 분위기의 음악 발매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과거 ‘무한도전’에서 90년대 음악 열풍을 불게 한 적이 있어요. 그 시점, 여러 그룹에게 비슷한 제의를 많이 받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90년대에 저는 20대였죠. 20대 윤일상이 하던 음악을 지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시 그때의 음악을 하면 멋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그 시절 음악을 원하면 그 시절의 음악을 들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다시 돌아가기보단 음악, 가수가 바뀌는 과정을 함께 공유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불후의 명곡’, ‘나는 가수다’처럼 소화를 잘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면 과거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건 환영이죠.”윤일상 작곡가는 지난 18일, 그룹 어느일상의 첫 싱글 ‘Falling’을 발표했다. 어느일상은 바이올린, 첼로, 생황, 피아노, 보컬로 이루어진 뉴에이지 팝 그룹이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것을 찾아 음악을 표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현재 가수 조PD와 함께하는 그룹 PDIS, 밴드 The 142를 비롯해 수많은 가수의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요즘 신보 작업부터 영화 작업까지 진행 중이에요. 가수 김연자의 신곡 ‘블링블링’ 작업을 마쳤고, 가수 이은미를 비롯해 몇몇 가수들의 앨범을 작업하고 있어요. 혁명까지는 아니지만, 이전과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 될 것 같아요. 또 영화 ‘뜨거운 피’ 작업을 하면서 내년부터 들어갈 두 영화의 콘셉트도 구성 중이에요.작곡가에게 감각은 필수적인 존재가 아닐까. 흔히 작곡가, 작사가에게는 회사원의 은퇴 시기와 같은 수명이 있다. 그리고 그 수명은 길지 않은 편이라고 현직 종사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윤일상 작곡가는 수십 년 째 가요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어린 감각이 있고 젊은 감각이 있고 나이가 들면 또 다른 감각이 생긴다. 죽는 감각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항상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있는 비결을 언급했다.


음악인의 자세? 예술성과 책임감윤일상 작곡가는 100% 완성된 작품이 아니면 되도록 발표하지 않는다는 주의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없는 음악은 하지 않으면 된다는 일종의 곡 주인의 책임감이다. 그는 기록된 음악은 한 번 녹음하면 고칠 수 없고 천 년이 되고 만년이 돼도 자신의 음악에 후회가 없어야 한다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강조했다.“히트곡을 위해서 작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대 때 정말 미쳐서 곡 작업을 했던 시절이 있어요. 3시간 이상 자본적 없고 곡 작업을 하다 나가면 길거리에 제 노래가 흘러나오던 시절이죠. 그렇게 10년 정도 하다 보니 히트 공식을 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적이 있어요. 하지만 히트곡을 만들기 위해 썼던 곡들은 히트가 안 됐어요. 그때 대중 앞에서 자만하면 끝이라는 걸 알았어요. 제가 곡을 만들 때 펑펑 울면 대중들은 0.1%만 알아줘요. 그만큼 진정성을 담아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 수만 약 900여 곡이다. 수십 년간 끊임없이 곡을 발표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 히트곡에 연연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는 음악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다. 음악은 곧 자신, 자신의 삶이라는 태도는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우리가 만나볼 수 있게 한다.“6살 7살 때부터 곡을 썼어요. 저한테 작곡이란 행위는 호흡 같아요. 모든 순간이 음악적 영감이 돼요. 지금 이 공간에 있는 것들, 이 순간도 마찬가지죠. 매 순간, 꿈속에서, 아이들과 노는 순간, 심지어 와이프와 싸울 때도 악상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어려운 사람과 차 안에서 이야기하다가 악상이 떠오르면 휴대폰을 켜고 한쪽에서 작게 녹음하는 때도 있죠.(웃음) 물론 곡이 잘 안 나올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피아노를 치거나 클래식을 듣는 등 분위기를 전환해보려고 해요.”


책임과 관련, 윤일상은 재미있는 일화를 전했다. 가수 이은미의 명곡 ‘애인...있어요’를 작사한 최은하 작사가 이야기다. 그는 가장 인상 깊은 작사가로 최은하를 언급했다.“과거 최은하 작사가와 ‘애인...있어요’라는 곡을 함께 작업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 제목을 받고 애인 다음에 붙은 말 줄임표를 빼자고 했어요. 그런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소신이 강하고 매 작품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또 그는 젝스키스 ‘예감’, 쿨 ‘해변의 여인’, ‘운명’ 작업을 함께한 작사가 이승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일상 작곡가의 수많은 명곡의 중심에 있는 작사가이기도 하다. 열악한 상황에서 작업했지만, 끝까지 완성도 높은 작업물을 내놓는 것도 중요한 책임이 따르는 부분이다.“승호 형과 작업하던 시절에는 정말 바빴어요. 가이드를 녹음하고 형이 그 자리에서 곡을 받고 바로 가사를 쓰고 녹음을 하는 식이었어요. 편의를 많이 봐줬기 때문에 다작할 수 있어요. 아마 형이 아니었다면 흥행하지 않은 곡들이 많았을 거예요. 특히 형이 쓰는 가사에는 항상 스토리가 있었어요. 일정 부분 이상의 퀄리티가 보장됐죠. 또 형의 글은 그냥 글로만 봐서는 잘 안 느껴지는데 노래를 들으면 그 스토리가 느껴져요. 승호 형도 음악을 하던 분인데 음악을 잘 이해하면 가사도 멜로디와 잘 어울리게 탄생해요.”현재 작사가로 데뷔,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누구나 최은하, 이승호 작사가처럼 극적인 흥행 곡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 전에 데뷔라는 관문이 있는 것. 윤일상 작곡가는 ‘좋아하는 작곡가에게 개사곡, 글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팁을 전했다.

“작곡, 작사 지망생들에게 메일을 받는 경우가 있어요. 작곡은 곡을 들어볼 수 있지만, 작사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서 피드백을 주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보통 팝송 등에 개사해서 보내면 더 잘 파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수많은 글을 보내는 이들 중에서도 딱 네 줄의 글만 보냈는데 눈이 가는 가사가 있어요.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 볼 수 있는 동시에 글이 멋있을 때 그다음을 기대하게 되죠. 실제로 메일로 받은 글만 보고 곡을 주고 작사가로 활동하는 분도 있어요. 운도 중요하지만, 운도 실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윤일상 작곡가의 목표, 100년 가는 곡하지만 윤일상 작곡가는 자신에 대해 ‘아직 멀었다’고 표현했다. 가장 완성도 높은 곡 역시 다음에 발표될 작품이라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말했다.
“전 아직 멀었어요. 음악은 하면 할수록 어렵고 공부할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해요. 게임을 해도 어느 정도 난도가 있어야 재밌잖아요.(웃음) 특히 음악은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나요. 슬럼프가 올 수 있지만, 반드시 그 슬럼프 기간을 거치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죠. 물론 슬럼프도 자주 있지만, 여전히 음악을 한다는 게 설레요. 피아노 앞에 앉기 전, 작업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기 전, 곡을 완성하고 나서도요. 살아있는 동안엔 알 수 없겠지만, 100년 이상 가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좋은 음악은 언젠가 빛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 역시 ‘내가 진솔하게 음악을 했구나’하는 증거라고 생각해요.음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히트 작곡가’여서가 아닌 그렇게 했기 때문에 ‘히트 작곡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부분이다./byh_star@fnnews.com fn스타 백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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