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의 경제, 규모의 연구
2019.09.30 17:24
수정 : 2019.09.30 17:24기사원문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샌타페이연구소 소장을 지낸 제프리 웨스트 박사는 '스케일'이라는 저서를 통해 생물의 크기에 따라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 안에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 소개했다. 첫 번째 질문은 "동물의 몸집이 2배로 커지면 필요한 에너지도 2배로 늘어날까"이다.
그는 이 질문의 대상을 동물에서 도시로 옮겨보았다. 도시에서도 비슷한 규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시 인구가 2배로 늘어났을 때 도로, 전선, 수도관, 주유소와 같은 기반시설은 85% 정도만 증가하는 규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산출량이 2배로 증가할 때 생산비용이 2배보다 낮게 증가하는 규모의 경제가 이뤄진 것이다.
도시에서는 한 가지 규칙성을 더 볼 수 있었다. 도시 규모가 2배로 늘어날 때 임금, 재산, 특허건수는 2배를 넘어 115%씩 증가했다. 생산요소 투입량의 증가율보다 생산량의 증가율이 더 큰 수확체증(Increasing returns of scale)이 일어난 것이다. 제프리 웨스트 박사는 도시의 사회 관계망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상호작용하고 의사소통하며 만들어낸 결과라 설명한다. 이 외에도 메릴랜드대 줄리언 사이먼 교수, 하버드대 마이클 크레머 교수 등 많은 학자들이 인구 규모와 밀도가 기술혁신의 선행조건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잠재적 발명가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연구기관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이고, 연구자가 더 많아질수록 기술혁신 속도는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연구기관의 인력은 1만5000여명이고, 그중 연구인력은 1만2000여명이다. 2011년에도 1만5000여명이었던 것을 보면 출연연의 인력 규모는 정체돼 있다. 미국, 중국과 비교했을 때는 인구수가 적은 만큼 절대적 규모에서 연구인력이 적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1000명당 40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21명 수준인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도 적은 편이라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학기술혁신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기관의 인력 확충이 필수과제로 다가온다. 이와 함께 연구자가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행정업무를 근접 지원하는 행정인력도 확충돼야 한다.
동물과 도시의 규모가 커질수록 에너지효율이 높아지듯 연구기관의 인력이 늘어나면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다양한 연구자들이 교류하면서 창의적 연구를 할 확률도 높아지고, 연구의 효과성도 함께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인력 규모를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확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국가 과학기술 발전과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연구기관의 인력 규모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