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0%에도 은행에 몰리는 시중자금 '돈맥경화' 심화
2019.10.06 16:32
수정 : 2019.10.06 16:42기사원문
은행 요구불예금 회전율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은행에 돈을 맡겨 놓고 쓰지 않으면서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는 시중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요인이지만 최근 파생결합상품(DLF, DLS) 사태로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서 기존 투자 상품에 몰렸던 자금까지 이탈해 은행 예금상품에 몰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기예금 2조 늘어 올해 55조 돌파
6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9월 말 기준 653조915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8월과 비교해 1조9787억원 늘어난 수치다. 전월(11조5541억원)에 비해 증가폭은 둔화됐지만 1개월 만기 초단기 정기예금 금리가 0%대에 진입하고 1년 만기 정기예금은 1%대 초반까지 금리가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올들어 5대 은행 정기예금에 몰린 자금은 55조5280억원에 달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강화됐고, 상황을 관망하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금리가 낮아졌지만 정기예금으로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요구불예금도 계속 늘고있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MMDA 제외) 잔액은 9월 419조3579억원으로 지난해 말 보다 21조3429억원 급증했다. 반면 올해 상반기 기준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17.3회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요구불예금은 언제든 인출이 가능한 자금인데,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은행에 자금을 맡겨 놓고 돈을 꺼내 쓰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면 투자 상품에선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공모 및 사모형 국내 주식형 펀드에선 올들어 2조9351억원의 자금이 이탈했다. 해외 주식형 펀드에서도 2조5187억원이 순유출됐다. 국내 및 해외 주식형 펀드에서 올해 빠져나간 자금은 5조4538억원에 이른다.
실제로 최근 DLF 불완전판매 논란에 휩싸인 은행들의 사모펀드 판매규모가 줄었다. 우리은행의 8월 말 사모펀드 판매잔고는 6조9789억원으로 전월대비 5744억원, 같은 기간 하나은행은 판매잔고는 3조6344억원으로 1957억원 각각 감소했다.
■DLF 사태로 '안전자산 선호' 뚜렷
한국은행에 따르면 1년 만기 정기예금의 신규취급액 기준 금리는 8월 기준 1.61%로 2017년 8월(1.60%) 이후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경우 2%대 상품은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졌다. 미국이 다시 금리 인하로 방향을 틀었고, 이번달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은행들의 예금금리는 앞으로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들의 1개월 만기 상품은 금리가 0%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초저금리에도 은행 예금으로는 계속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금리는 낮지만 예금 등 안전한 자산에 돈을 넣어두고 상황을 관망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전후로 등락을 거듭하는 등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하고, DLF 불완전판매 논란이 증폭되면서 투자처를 잃은 시중 부동자금이 크게 늘고있다.
시중은행들이 내년부터 시행되는 신(新) 예대율(예금대비 대출금 비율) 규제를 맞추기 위해 특판 상품을 운영하는 등 예수금 확보에 나선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예대율이 100%를 넘어서면 대출 취급이 제한되는 등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예대율 계산식의 분모인 예수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예대율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예금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cjk@fnnews.com 최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