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고조 美·이란, 국제사회 만류에도 보복 다짐
2020.01.07 16:09
수정 : 2020.01.07 16:0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미국에 의해 이란 군부의 실세인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가 피살된 이후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연일 고조되고 있다. 특히 6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이 거행되면서 이란 내 반미 정서가 극에 치닫고 있다. 미국도 이란의 보복에 대응하기 위해 중동 지역에 병력을 추가 배치하는 등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란, 솔레이마니 장례식에서 복수 다짐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테헤란 도심에 위치한 엥겔랍 광장에서 진행된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에는 수백만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장례식장은 애도의 물결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군중들은 이란의 주요 성지를 거쳐 엥겔랍 광장에 도착한 솔레이마니의 관과 이번 공습에서 함께 피살된 6인의 관을 한 번이라도 만져보려 몰려들었고 손이 닿지 않으면 옷가지를 던지기도 했다. 이들은 솔레이마니를 순교자로 일컬으며 연신 "복수하라"고 외쳤다.
한편 이날 장례식에는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와 하산 로하니 대통령, 사법부 및 솔레이마니의 후임인 이스마일 가니 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이날 이란 국영TV가 중계한 솔레이마니의 추도식에서 하메네이는 격해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두 차례나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나왔다. 이란에서 '신의 대리인'으로 통하는 하메네이의 울음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그대로 광장으로 전달되자 수백만명이 그를 따라 울었다.
그러나 이날 장례식장에서 솔레이마니의 딸인 제이납 솔레이마니는 울지 않았다. 추도식에서 그는 침착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8분여간 군중들에게 연설했다.
제이납 솔레이마니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어두운 날이 직면했다"며 "무지함의 상지이자 시오니즘(유대 근본주의)의 노예인 미친 트럼프는 내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 모든 것을 끝냈다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 아버지의 순교가 이란의 저항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며 "중동에 있는 미군의 가족들은 곧 그들의 자식이 죽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삶은 악몽이 될 것"이라고 복수를 다짐했다.
솔레이마니의 후임으로 지목된 이스마일 가니 신임 사령관은 미국에 대한 '피의 보복'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그는 "전능자가 복수를 약속했다. 우리는 순교자 솔레이마니의 길을 계속 따를 것을 약속한다"며 "죽음에 대한 유일한 보상은 이 지역에서 미국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솔레이마니에 대한 피살은 이란과 미국 간 보복 행위 및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의 분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평했다. 미국의 공습 이후 이란은 핵합의를 더 이상 준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례식 이후 하메네이는 이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미국 이익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자 미국의 공습에 대한 비례적 공격을 해야할 것"이라며 대미 보복 기준을 제시했다.
NYT는 "하메네이의 발언은 이란 지도부에게 깜짝 놀랄만한 것"이라며 "이제 이란 정부가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美 "보복에 반격할 것" 경고
이란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피살에 가혹하게 보복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미국도 보복에는 반격하겠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란은 절대 핵무기 가지지 못할 것"이라며 "이란은 오랜 기간 골칫거리였으며 이란이 공격을 감행한다면 즉각 52곳에 반격할 준비가 돼 있다"며 재차 경고했다.
한편 미 군 당국 내부에서는 대이란 및 전략을 둘러싸고 혼선이 빚어졌다. CNN은 이날 이라크 주둔 미군 태스크포스(TF)를 이끄는 윌리엄 실리 준장이 작성한 "이라크 의회와 총리의 요청에 따라 통합합동기동부대가 수일, 수주 내 병력을 재배치한다"는 내용의 서한이 공개됐지만 이어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국방장관이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번복했다고 전했다.
오히려 미국은 하메네이의 발언 이후 이란의 보복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중동에 공수부대와 특수부대 병력을 추가 배치하고 전략 폭격기 투입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익명의 군 당국자가 "국방부가 B-52 폭격기 6대를 인도양 내 디에고가르시아 공군기지로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며 "이 폭격기는 지시가 내려지면 대 이란 작전에 바로 투입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세계 중재 방안 찾으려 안간힘
한편 국제사회에서는 미국과 이란 간 무력 대응을 막기 위한 중재에 나섰지만 역부족인 모양새다.
유럽은 이란의 사실상 '핵 합의 탈퇴' 선언에 비상이 걸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란에 핵 합의 복귀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는 등 핵 합의를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벨기에 브뤼셀 NATO 본부에서 열린 회원국 대사들과의 긴급회의 뒤 "새로운 충돌은 누구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란은 추가적인 폭력과 도발을 자제해야 한다"며 "우리는 여러 테러 단체에 대한 이란의 지원을 규탄하는 데 있어 단합돼 있다"고 자제를 촉구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은 UN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하려던 이란 외무장관의 비자를 거부했다. 도널트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오는 9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개최되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의 입국 비자를 통과시키지 않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은 "중동지역의 긴장감이 금세기 들어 최고 수위"라고 걱정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