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순간 이겨내며 수십미터 굴뚝 오른다..'환경 지키는 스파이더맨'

      2020.01.08 17:45   수정 : 2020.01.08 20:21기사원문
지난해 말 강원도 삼척의 한 시멘트 공장. 겨울 칼바람을 뚫고 한 남자가 성큼성큼 공장 굴뚝을 오른다. 하얀 안전모에 형광 안전띠를 맨 모습이 12월의 산타는 아니다.

잠시 뒤 그가 굴뚝에서 무언가를 캐낸다. 그리고는 지상의 동료에게 그것을 내려 보낸다.
지상 50m의 이 굴뚝에서 그는 이렇게 2시간이 넘게 작업을 했다. 가까이 다가가본다. 그의 정체는 김성민 한국환경공단 수도권동부지역본부 대기관리부 과장. 그가 마치 보석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채취한 것은 미세먼지였다. 종합환경서비스기관으로 환경공단은 환경오염 방지는 물론 환경개선, 자원순환 촉진,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우선은 단연 미세먼지 관련 사업이다. 대기오염과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공단은 우리나라 대기환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공단의 일은 대부분 현장에서 시작된다. 직원들은 깨끗한 환경을 위해 더럽고, 위험한 일터를 기꺼이 찾는다. 김 과장도 이런 직원들 중 한명이다.

■굴뚝에 올라야 일은 시작된다

김 과장은 지상 40~80m 높이의 공장 굴뚝에 직접 올라가서 미세먼지를 측정한다. 공단은 전국 4개의 권역에 관제센터를 구축해 굴뚝 자동측정기기(TMS) 체계를 운영 중이다. 전국 600여곳의 사업장에 대기오염물질 배출 현황을 24시간 상시 관리하는 TMS가 부착돼 있다. 자동측정기기라지만 미세먼지 시료가 필요할 때 또는 장비 고장, 교체 등의 이유로 직원들은 굴뚝을 탄다. 이날 김 과장이 굴뚝을 오른 이유도 마찬가지다.

공단에서 김 과장은 알아주는 굴뚝 베테랑이다. 굴뚝 팀은 2인 1조가 보통이다. 한 사람은 굴뚝 위에서 오염 물질 시료를 채취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굴뚝 밑에서 작업을 한다. 오차 없이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해야 올바른 환경 정책을 세울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낙하 사고. 위에서 작업을 하다가 볼트 하나가 떨어져도 중력 가속도가 붙어 굉장히 위험하다. 이 때문에 김 과장 같은 선임 작업자가 굴뚝 위에서 작업을 한다.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김 과장도 엘리베이터 문제로 1시간 정도 70m 높이의 굴뚝에서 갇힌 적도 있었고, 물건을 떨어뜨려서 맞을 뻔한 적,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낙하할 뻔한 아찔한 경험들이 많았다. 여름과 겨울에는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한다. 바람 불고 비오는 날에는 안전 사고에 취약하다. 현장에 나가면 긴장한 상태로 민감한 작업을 수시간 반복해야 한다.

굴뚝 현장에서는 TMS를 통해 관제 센터에 자동으로 전송되는 자료가 얼마나 믿음직하고 정확한지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시험을 진행한다. TMS의 설치 위치 환경조건 성능 등이 대기오염 공정시험 기준에 적합한지부터 배출 장소를 측정하는 방법을 달리했을 때 측정값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상대 정확도를 시험한다. 시료 채취의 개수부터 단위 채취방법까지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결과까지 꼼꼼히 챙겨야 하다보니 집중해야 할 부분도 상당하다.

미세먼지 농도는 어떻게 측정하는 것일까. 김 과장은 "먼지필터 샘플이 나오기 전에 무게를 재놓은 게 있다. 전후의 무게차를 가지고 먼지 농도를 구한다. 그 시간대에 관제 센터로 전송되는 실시간 값과 실제 측정값의 정확도가 얼마나 맞는지, 법적으로 요구하는 정확도 안에 들어오는지 등을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굴뚝 1700개가 만드는 빅데이터

굴뚝에서 내려 왔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권역환경관리처에는 굴뚝에서 가져온 시료를 분석한다. 현장에선 대기오염물질을 측정하고, 사무실에선 검사를 한 뒤 결과값을 기록한다. 수도권동부지역본부의 관할 사업장은 43개 정도다. 굴뚝으로는 약 100여개인데 하루 동안 서버에 쌓이는 데이터만 3만5000여개에 달한다니 실로 방대한 양이다.

김 과장은 "전국 1700여개 굴뚝에서 쏟아져 나오는 데이터는 어마어마하다"며 "그 빅데이터가 우리나라 환경정책에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이고 정말 중요한 데이터다. 환경정책에 쓰일 때 자부심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TMS로 측정된 대기오염물질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먼지, 불화수소, 암모니아, 일산화탄소, 염화수소 등 7종이다. TMS를 통해 얻은 정보를 행정기관은 대기오염사고 사전예방 및 행정처분, 배출부과금 부과 등에 활용한다. 사업장은 공정과 배출시설을 개선해 운영비를 줄이고, 오염물질 저감으로 사회적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공단 종합관제센터에서는 전국 TMS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TMS와 관제센터를 통해 대기오염을 측정하는 클린시스템은 연간 수천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낸다고 한다.

TMS 측정 결과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하면 행정처분과 함께 초과배출부담금이 부과된다. 먼지·황산화물의 경우 배출허용기준의 30% 이상만 배출해도 기본배출부과금이 부과된다.

1997년 TMS 구축되고 대기환경보전법이 강화되면서 전국의 사업장에서도 대기질 개선을 위한 노력을 자율적으로 진행하는 추세다. 김 과장은 "10~15년 전 관련법과 현재는 큰 차이가 있다"며 "대기오염 물질을 규제하는 수준도 높아져 당연히 배출오염 농도도 낮아졌다. 그만큼 방제 시설 기술도 발달했다. 사업장에서도 투자를 통해 기준을 준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업장 담당자의 협조는 그에게 큰 힘이 된다. 그는 "실제로 현장에 나와보면 외관부터 깔끔하고 담당자의 관심도가 매우 높다. 자료를 요청할 때도 금방 협조하고 과거와 많이 달라진 분위기"라고 했다.

■공장 늘어도 굴뚝 미세먼지는 준다

이런 노력 덕분에 굴뚝 사업장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TMS가 부착된 전국 626개 사업장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33만46t으로 전년 대비 3만1413t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4년간 사업장 수는 66개가 증가했으나 배출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특히 미세먼지 주요 원인물질로 알려진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의 배출량은 최근 4년간 꾸준하게 감소하는 추세다. 2018년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2015년 40만892t 보다 18% 감소했다. 연도별로는 2015년 40만892t, 2016년 39만8992t, 2017년 35만8313t, 2018년 32만6731t 등이다.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중 6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2015년 대비 5만2340t(19%)이 줄었다. 환경부는 "미세먼지 저감대책에 따라 노후 화력발전소의 가동중지 및 대기오염물질 방지 시설의 개선 효과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업종별 배출량은 발전업이 14만5467t(44%)으로 가장 많고, 이어 시멘트제조업이 6만7104t(20%), 제철제강업 6만3384t(19%), 석유화학제품업 3만5299t(11%), 기타 업종 1만8791t(6%) 순이다. 이 중 발전업은 노후 화력발전소 가동중단 등 지속적인 미세먼지 저감 활동으로 2018년 배출량이 2015년보다 3분의 2 수준으로 감소했다.

시도별로는 충청남도가 7만5825t(23%), 강원도가 5만2810t(16%), 전라남도가 4만8370t(15%), 경상남도가 3만6078t(11%), 충청북도가 2만5572t(8%) 등이다.

■올해 TMS 사업장 2000여곳 확대

대기환경의 광역적 관리를 위해 올해 상반기에 시행될 예정인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대기관리권역이 수도권 지역에서 수도권외 지역으로 확대된다. 해당 지역의 총량관리 대상 사업장은 TMS 부착이 의무화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TMS 부착 사업장 수는 현재 626곳에서 올해 2000여곳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연 1회 공개되던 대형사업장의 TMS 측정결과도 올 4월 3일부터는 실시간 공개된다. 그동안 먼지·황산화물에만 부과되던 대기배출부과금도 질소산화물으로 강화될 예정이다. 이런 내용과 곁들여 '체감할 수 있는 미세먼지 줄이기'는 조명래 환경부 장관의 입에 붙은 말이 됐다.

미세먼지 줄이기 최전선에 있는 김 과장은 소소한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고 당부했다. 그는 "분리수거, 자동차 공회전 등 대기 환경을 위해 작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이런 실천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선물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항상 일이 터지고 내가 인지했을 때만 관심을 가진다.
미세먼지도 육안으로 보이니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환경은 우리 주위에 있다.
좀 더 세심하게 개개인이 작은 일에서라도 생각하면서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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