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연민이 아니라 공감...혼자만 행복할 수는 없다
2020.01.13 17:16
수정 : 2020.01.13 17:1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전주=김도우 기자】조부는 와세다대 법대를 입학해 경성대를 졸업했다. 부친은 전북대 교수를 했고, 남편과 아들은 의사다. 누가 봐도 금수저. 남편이 원장인 정길수 신경외과의원은 입소문을 타고 환자가 넘쳐났다.
박현정 이사장은 이때가지 평범한 가정주부 였다.
부족함 없던 박 이사장은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대학에서 공부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생활을 했다. 마흔이 조금 넘은 어느 날 곰곰 생각해봤다. ‘왜, 내 가슴이 뛰지 않는 걸까’ 하나님의 음성이 생각났다. 내가 경주마처럼 달리는데 급급해서 미처 내 영혼이 아직 도착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4대가 기독교 집안인데 ‘뭔가를 나눠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너만 잘 먹고 잘 살래?’라는 말을 또렷이 들었던 터였다.
모두에게 나누며 사는 가르침으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했다.
2000년 42세 나이에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했다. 3월에 입학했는데 6월 ‘덕진재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게 됐다. 4명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일하며 공부했다. 4년여를 사비로 재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했다.
무턱대고 ‘덤벼들 일이 아니다’는 생각으로 컨설팅을 받았다.
재가·요양원·노인병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래서 2002년 만든 것이 ‘사회복지법인 나눔복지재단’이다. 복지사업이 편안하지 않은 것처럼 박 이사장도 시련이 왔다.
박 이사장은 “복지하면서 너무 어렵고 힘들어 새벽마다 울었으나 편안한 일상에서 벗어나 고통을 겪으면서도 복지를 시작하게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이 견딜 수 있던 것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임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는 말이다.
늘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쉽지 않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었다.
더 도전했고 악착같이 했다. 주변에 곱지 않은 시선을 이겨내기 위해선 복지사업을 일으켜야 했다. 우리너싱홈을 2006년도에 개원하고 바로 옆 우리노인전문병원을 세웠다.
2013년 5월 의료법인 디딤 의료재단 우리요양병원을 개원한다.
나눔복지재단과 디딤의료재단은 복지에 관한 보편성과 특수성을 감안해 분야별 최저선과 적정선을 마련하는 ‘복지 설계’를 했다. 그는 복지기준선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위에서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원 스스로 토론과 협의를 통해 깨달으면서 만들어가는 ‘복지’에 기초해야만 사상누각이 안 된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 방향과 주장은 명료하다.
복지사회에서는 모든 사회 성원이 가난의 속박에서 벗어나 각자 자기가 바라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1차적인 요건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경제 성장도 필요하며, 부(富)의 공정한 분배도 요구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신적인 만족을 주는 ‘사회 환경이다’는 것이다.
나눔복지재단 · 디딤의료재단 전 구성원이 정신적 만족을 느끼는 것이 제일 중요한 가치가 이때 세워졌다.
두 기관에 400명이 넘는 직원이 있지만 일가친척이 없다. 2000년부터 시작한 노인세대 밑반찬 나눔은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무료국수 봉사는 일주일에 두 번 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마지막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전북지역 100년된 교회를 찾아다니며 역사를 느끼고 배워 봉사단을 만들어 운영해 보고 싶다.
서문교회, 남문교회, 만성교회, 금산교회, 위봉교회 등 100년이 넘는 교회를 다니며 기도하고 섬기면서 사는 것이 바램이다.
964425@fnnews.com 김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