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설 FX는 도박" 판결에… 금감원 "금융상품 아니라 감독권 없다"
2020.05.21 17:47
수정 : 2020.05.21 22:27기사원문
21일 파이낸셜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FX렌트 조모 대표(61)가 지난달 24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뒤 사설 FX마진거래 업체 7곳이 스스로 영업을 중지했다.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서 천문학적 수익을 거둬온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들이 이번 형사판결을 계기로 엑소더스(대탈출)에 나서는 모양새다.
■피해자 느는데 당국은 '나몰라라'
조 대표가 꼼수를 부리며 사세를 키우는 사이 감독당국은 4년간 서로 책임을 미루며 갈팡질팡했다. 국가가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들이 성장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은 대법원이 FX렌트의 거래행위를 도박으로 판단하자 사실상 해당 사안에서 손을 뗐다. 정상적 경로로 이뤄지는 FX마진거래도 아니고, 금융상품으로도 볼 수 없기에 금융당국의 규제대상이 아니라는게 금감원의 입장이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몫이라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 이전에 금융위원회에서 사설 FX마진거래는 금융상품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고, 대법원에서도 도박이라고 판단했다"며 "금감원은 자본시장법을 적용받는 제도권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권한만 갖고 있다 보니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들은 규제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감위는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를 제재하기엔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고 항변한다. 문제가 되는 업체들은 스스로 금융투자업체로 표방하기에 관련 전문가가 없는 사감위가 이를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사감위 관계자는 "사감위는 심의기능이 없어 '사설 FX마진거래가 불법도박에 해당한다'는 명확한 판단기준이 나오지 않고선 행동에 나서기 어려웠다"며 "특히 FX마진거래와 같이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에 대해선 판단을 내리기 애매하다"고 토로했다. 사감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사설 마진거래 업체들에 대한 심의를 요청했으나 명확한 판단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소송이 제기된 사안에 대해서는 판결을 받을 때까지 심의중지되는 경우가 많다"며 "금감원이 제도권에 들어와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거나 검찰이 조 대표에 대한 공소사실에 도박 혐의를 적용했으면 빨리 정리됐을 사안이었다"고 지적했다.
■"신종도박 근절 위한 법안 필요"
유관기관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이들 업체에 대한 제재를 주저하는 사이 사설 FX마진거래를 합법이라고 믿었던 회원들은 큰 낭패를 봤다. 일부 회원은 거액을 잃고도 업체로부터 '당신도 도박 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는 협박에 대응도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증권사의 실제 차트를 갖고 와 정상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소개하니 잘 모르는 고객들은 속을 수밖에 없다"며 "감독당국은 제도권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피해를 방치한다. 금감원과 사감위, 방심위가 의지가 있었다면 진작 해결됐을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금융이 점점 복잡다변화되고 있다. 제도권에 없는 상품이라고 방치하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도박, 사기에 의한 범죄라 하더라도 일종의 금융으로 포장된 행위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나서 자체적으로 관리하거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점차 진화해가는 신종도박 행위를 사전에 근절하기 위해선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로선 기능이 제한된 사감위의 권한을 늘려 선제 대응에 나서도록 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앞서 20대 국회에선 사감위나 수사기관이 불법온라인사행산업 이용계좌로 의심이 인정될 경우 금융회사에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 조치를 요구하고, 사감위 등이 직접 불법온라인도박 이용자로 참여해 관련 내용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정세균 의원안)이 발의됐다. 또 사감위에 단속 권한을 부여하고, 사법경찰관리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곽상도 의원안)도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두 법안은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감위 관계자는 "금융상품으로 위장한 신종도박에 대해선 수사를 통해 내용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사감위는 실상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며 "지금으로선 진화하는 범죄에 대응이 한발 늦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