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표적수사' 논란만 부른 20개월… 李 '승부수'가 변수되나
2020.06.03 17:54
수정 : 2020.06.03 17:54기사원문
이 부회장과 삼성 측은 검찰이 지난 1년8개월간 전·현직 임원 30여명을 100차례 넘게 소환조사하는 '먼지떨이식' 수사를 벌이면서까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경영승계 의혹으로 확대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결국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기소 가능성이 제기되자 '객관적 판단'에 호소하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20개월 기업털기 수사
3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이 2018년 11월 증권선물위원회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고발 이후 1년8개월에 걸친 수사에도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대상인 이 부회장과 삼성 일부 임원들은 검찰이 여론 등에 떠밀려 무리하게 기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을 '최후의 카드'로 꺼내 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한 지난 2018년 말부터 이달까지 삼성 전·현직 임원 30여명을 상대로 100여차례 소환조사를 벌였다.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사장),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 등은 지난 1년8개월간 각자 3~5차례씩 소환돼 검찰의 고강도 수사를 받았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검찰 압수수색만 삼성 관계사 17곳에서 7차례 정도 이뤄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특정 기업 수사가 이렇게 길고,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이 1년 넘게 수사력을 집중한 배경에는 삼성 전·현직 임원들로부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몸통'으로 지목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 사이의 관련성을 캐내는 데 사활을 걸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전·현직 임원은 물론 이 부회장도 지난달 26일과 29일 두 차례 소환조사에서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보고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회계 수사가 경영승계 수사로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서 출발한 수사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확대된 배경도 의문스럽다는 반응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혹은 국정농단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검팀이 이미 수사를 벌여 이 부회장 등을 기소했다.
즉 이 사안이 현재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도 다뤄지고 있는 것이라서 삼성바이오 수사에서는 재수사를 벌이는 꼴이 된다. 이로써 이 부회장과 삼성은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 2016년 12월 특검 수사 이후 4년반 동안 검찰 수사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서 출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나아가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로 확전된 검찰의 수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 개시부터 이 사건을 삼성물산 합병과 경영승계로 이어지는 프레임(틀)을 만들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라며 "증선위가 고발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만 밝히면 될 텐데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의 범위를 넓힌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애당초 '범죄'로 예단해 수사 장기화를 의도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서울권 법학대학 교수는 "검찰이 수사 시작 이후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하자 수사기간을 늘리면서 피고인들은 물론 삼성 전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며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리는 사안을 검찰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리만 골라 '범죄'를 구성하려 한다면 더 큰 파장을 몰고 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