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장악' 보건복지위, '이 법안'이 성패 가른다
2020.06.20 13:30
수정 : 2020.08.01 16:49기사원문
미래통합당의 회의 불참으로 야당 간사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의결정족수를 확보한 만큼 자력으로 보건복지 부문 입법을 자유롭게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복지위에 다수 의원을 배치할 것으로 예고된 지난달부터 여당 중진 의원 상당수가 복지위 배치를 원하는 등 복지위가 21대 국회의 꽃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제기됐다. 논란이 되는 법안 대다수가 여야 대립 끝에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던 과거와 다른 상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더민주 장악한 복지위, 의지 있을까
20일 헌법과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법안 통과 등 주요안건이 의결될 때는 재적의원 과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논의는 재적의원의 1/5 이상의 출석으로 가능하지만 통과를 위해선 상임위 의원 과반의 동의가 필수적인 것이다.
지난 17일 윤곽을 드러낸 국회 보건복지위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당론으로 차후 4년 간 보건복지 분야 주요정책을 단독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는 뜻이다. 기존 비인기 상임위였던 복지위에 중진 다수가 배치를 원해 일찌감치 물밑경쟁을 벌인 것도 이 같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복지위에 소속됐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추진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실적을 쌓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180의 의석을 확보해 본회의 통과 역시 확실시돼 보건복지 분야 입법은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상황이다.
이에 위원장인 한정애 의원을 비롯해 인재근 의원, 남인순 의원 등 3선 중진이 여럿 포함됐고 간사인 김성주 의원과 정춘숙, 권칠승 의원 등 주목받는 재선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치열한 경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관심은 어떤 법안이 통과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특히 의사협회 등 직능단체의 반발로 국민적 요구에도 빛을 보지 못했던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는지를 두고 관심이 뜨겁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된 수술실CCTV 의무화 법안(이른바 권대희법)과 불법을 저지른 의사 면허를 규제하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변명은 '안 통해' 수술실CCTV 설치법 주목
수술실CCTV 의무화법은 2014년 대형 성형외과에서 포착된 유령수술 정황과 2016년 발생한 권대희 사건, 같은 해 있었던 분당 차병원 신생아 사망 은폐사건 등 환자 인권보호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일부 의료계의 일탈행위를 막고자 입법돼 관심을 모았다. 수술실에 CCTV를 달아 원하는 환자가 이를 열람 및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해 의료사고와 각종 불법행위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다.
유령수술과 대리수술, 공장식수술로 인한 피해가 꾸준히 보고되는 상황에서 의회가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법안 발의의 배경이 됐다.
하지만 법안 발의부터 복지위 의원이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는 등 문제가 엿보였고, 끝내 논의 한 차례 이뤄지지 않으며 자동폐기 돼 공분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수술실CCTV 설치법 공론화에 앞장서온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60·여)가 20대 복지위 여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실에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으나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이씨는 “몇차례 전화를 해서 의견을 전달하고 싶다고 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며 “이미 유령수술과 공장식 수술이 여러 번 보고되고 우리 대희(2016년 사망)처럼 아까운 목숨들이 지고 있는데 왜 국민 대표란 사람들이 논의조차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으나 변화는 없었다. 이씨가 20대 국회가 문을 닫기까지 국회 앞에서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음에도 그랬다. <본지 5월 30일. ‘[단독] 의원 한 명도 '논의하자' 제안 없어··· 수술실CCTV 법안 폐기 전말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일각에선 대한의사협회의 반대가 장애물이란 분석이 나왔다. 당시 의협은 ‘소극적 진료로 피해가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국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부정 의료행위 방지와 환자 보호를 위해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음에도 국회가 꿈쩍 않은 배경엔 이러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총선 압승으로 국면은 전환됐다. 당시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중 어느 쪽도 단독으로 상임위를 통과시킬 수 없는 팽팽한 구도였으나 21대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상임위 통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도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책임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란 평가다.
■20차례 발의에도 번번이 좌절, 의사면허 규제법
강력범죄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의사 면허를 규제하는 법안 역시 같은 상황이다. 2000년 1월 김찬우 당시 보건복지위원장(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의료인 면허취소 사유가 대폭 완화됐는데, 이 법 이후 환자 인권이 추락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기존 의료법은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지만 법이 개정되며 의료법 또는 보건의료와 관련되는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만 면허취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본지 4월 4일. ‘범죄 저질러도 면허 유지... 무적 방패 '의료법' 이대로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조>
이 법 통과 이후 중대한 의료사고를 저지른 의료진조차 바로 의료행위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통상 의료사고에 적용되는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죄목으로는 의사 면허나 병원 영업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집행유예로 풀려나오기까지 했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에게 환자를 해하려는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서다.
적잖은 환자 유족들은 의료진에게 “법대로 하라”는 말까지 듣는다고 호소한다. 수술실CCTV나 온전한 의무기록지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유족이 입증책임까지 져야 하는 한국 법체계에서 법대로 하라는 말은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의 확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에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의사 면허를 규제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20건 이상 발의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국회 문턱을 넘은 건 단 한 건도 없다.
21대 복지위 과반 이상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에게 쏠리는 기대가 큰 이유다.
이와 관련해 2016년 이후 의료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온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올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 법 개정 이후에 의료법이 망가지면서 의료인의 윤리적 수준도 무너졌다”며 “일부 미꾸라지가 전체 의료계를 혼탁하게 하고 불신하게 하는 상황인데, 법 개정을 않고 관대한 처분만 하는 건 관용이 아니라 방임”이라고 비판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불합리한 관행이나 잘못된 문화·제도 등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김성호 기자 e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제보된 내용에 대해서는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 충실한 취재를 거쳐 보도하겠습니다. 많은 제보와 격려를 바랍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