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희 사건' 추적 반년의 기록 [김기자의 토요일]

      2020.06.27 17:00   수정 : 2020.06.27 16:5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참사 당시 선장이던 이준석씨는 지난 2015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았다. 선장이 배를 버리고 탈출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음에도 승객들에게 퇴선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됐다.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고 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작위’ 만으로 살인죄를 인정한 것이다.

배에서 차지하는 선장의 특수한 지위와 그에 따른 의무, 그에 대한 승객들의 신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으로 평가된다.

당시 검찰은 이 선장에게 살인 등의 혐의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석연치 않은 수사검사의 결정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20년, 의료사고의 상징적 사건으로 떠오른 ‘권대희 사건’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두고 집도의는 다른 수술실로 나가버렸고, 수술을 이어받은 의사는 인턴도 하지 않은 20대 일반의였다. 환자에게 사전 고지되지 않은 이 의사 역시 자리를 비운 동안 간호조무사 홀로 출혈이 멎지 않은 권씨를 지혈한 시간이 35분여에 이르렀다.

권씨는 수술 중에만 45kg 성인 여성 전체 혈액량에 해당하는 3500cc의 피를 흘렸지만, 이 병원에선 단 한 차례도 수혈을 받지 못했다. 이 병원 의료진은 권씨를 두고 모두 퇴근했다 밤 늦은 시간에야 돌아왔다. 119 신고 역시 한참 늦은 시각에 이뤄져 권씨는 이송된 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 사인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였다.

유족이 확보한 수술실CCTV가 가리키는 바는 명확했지만 이후 전개된 상황은 정 반대에 가까웠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늘 원성을 사 왔던 전문기관들조차 간호조무사의 지혈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경찰 역시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하지만 사건은 법원에 재정신청이 접수된 상태다. 사건을 수사한 성재호 검사가 해당 혐의를 뺀 채 처벌이 크지 않은 혐의만 기소했기 때문이다. 불기소처분이유서의 박약한 논리를 일일이 반박한 보도가 나가고 유족이 고검에 항고까지 했음에도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성 검사와 병원 원장 측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을 함께 나온 동기동창이다.

지난 수달 간의 취재에서 성 검사가 경찰 수사관에게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를 빼라는 취지의 수사지시를 수차례 내렸다는 증언까지 곳곳에서 들려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성 검사는 이 혐의를 적용하려 하지 않았던 걸까.


■의사들은 의료법만 무서워한다?

취재과정에서 의료진이 의료소송에 휘말릴 경우 ‘의료법만 두려워한다’는 증언을 여러차례 마주했다. 권대희 사건을 대리하는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한국에선 의료사고를 저질러도 페널티(벌칙)가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사고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업무상 과실치사로 처벌돼도 민사소송에서 배상도 좀 이뤄졌으니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경우도 많고 면허규제가 아주 느슨하다”고 언급했다.

민사재판에서 병원 측 80% 책임 판결을 이끌어낸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역시 “통상적인 의료행위를 하다가 실수를 했다고 하면 그렇지만(가벼운 처벌도 가능하지만) 무자격자가 영리적 목적의 성형수술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죄질이 나빠지는 것”이라며 “무면허 의료행위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달리 면허정지나 취소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이 향후에 형사처벌 및 행정적인 처벌을 받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기관 관계자와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을 풀어놨다. 경찰의 무면허 의료행위 기소의견 송치를 성 검사가 끝내 막으려 한 배경엔 이 같은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 검사는 무면허 의료행위 불기소 처분 뿐 아니라 환자 사망 뒤에도 버젓이 ‘14년 무사고’ 광고를 내걸다 한 차례 처벌을 받았음에도 다시 이를 내걸어 재차 고발된 사건에서도 병원을 처벌하지 않았다. 당시 성 검사는 이 병원 원장에 대해서는 ‘고의’를 조각하고, 병원은 ‘법인이 아니라 처벌하지 못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이 역시 본지 보도를 통해 일일이 반박된 바 있다. 앞서 검찰이 동일한 사안에서 이 병원을 기소한 것을 고려하면 성 검사가 재범임에도 이를 처벌하지 않은 건 자가당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본지 5월 16일. ‘[단독] 사람이 죽었는데... '그 검사'가 처벌하지 않은 이유’ 참조>

그러나 이것이 사건의 본질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건 모두 CCTV 안에 들어있다. 집도의는 수술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나가버렸다.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초짜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이어받았다. 그 과정에서 통상적인 경우보다 훨씬 많은 피가 흐르고 지혈이 되지 않는 등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의료진은 수혈이나 119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족은 고작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 정도를 갖고 법원에 재정신청까지 접수해가며 수년 째 싸우고 있다.


■본질은 '상해·살인', 왜 형법 적용 않나

전신마취 상태로 수술에 들어간 환자에게 의사는 바다 위 선장 못지않은 절대적 존재다. 적어도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는 집도의를 믿고 자신의 신체에 칼을 대도록 허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행 형법이 의사의 수술행위를 상해로 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리적으로 보면 수술은 그 자체로 상해죄에 해당하지만 환자의 승낙이 있는 의사의 업무행위이므로 처벌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환자의 승낙에 전제된 신뢰가 그림자의사 고용 등 의사 일방의 일탈로 깨질 경우 상해죄 적용이 법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검찰은 유령수술, 공장식수술 등의 사건에서 살인은커녕 상해나 사기죄조차 적용하지 않아왔다. '사회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국가 최고 법집행기관'이라고 홈페이지에 떡하니 적어놓은 검찰이 그랬다.

이준석 선장에겐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사형까지 구형했으면서도 제 병원 수술대에 마취상태로 오른 환자에게 다른 의사, 심지어는 막 면허를 취득한 일반의나 간호조무사에게까지 의료행위를 하도록 해 끝내 환자가 숨진 사건을 처벌하지 않는 건 한국 법체계가 ‘법 앞에 평등’이란 법치국가의 기본 원리는 물론 헌법상 보장된 생명권과 안전권마저 도외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유족들은 사고 이후 이 병원 관계자가 ‘다른 병원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수술을 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증언한다. 유령수술 실태를 내부고발하다 2018년 세상을 떠난 한 성형외과 전문의 역시 비슷한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다. 여전히 정상영업하고 있는 문제 병원과 그와 같은 비윤리적인 수술실을 운영하고 있을 ‘일부’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대체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단 말인가.


■기자가 기사를 쓰는 이유

세월호 침몰참사 이후 드러난 진실은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만천하에 내보였다. 폐선돼 마땅한 낡은 배가 여객선으로 활용됐고, 세월호 증·개축 과정에선 한국선급 검사원이 부실하게 검사를 진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선장을 비롯해 책임있는 승무원들 상당수가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구조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국회와 검찰의 직무유기로 진상규명은 6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2013년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쌍까풀과 코수술을 받던 여고생 사망사고 이후 드러난 ‘유령수술’은 보건당국의 무관심 속에 ‘공장식 수술’로 진화했다. 외국인 환자 알선행위를 허용한 정부는 불법브로커 단속조차 하지 않는 '방치'를 오랜 기간 이어오고 있다. 온라인엔 불법 성형광고가 넘쳐나지만 단속과 처벌은 미미하다. 피해가 거듭 발생함에도 의료계 밖으로 사건이 공론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책임 있는 의료진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진실을 말한다.

당시 내부고발자 등이 법정 등에서 진술한 바는 충격적이었지만 이에 대한 충실한 검찰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대 국회 역시 환자인권 보호를 위해 발의된 ‘수술실CCTV 설치법(이른바 권대희법)’을 한 차례 논의 없이 폐기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성형외과 사망실태를 파악조차 않고 있다. 거론하기 민망한 언론의 과오 역시도 상당하다.

기자의 눈엔 또 한 척의 배가 서서히 침몰하는 광경이 보인다. 그러나 배 안의 아이들은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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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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