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화학반응을 조절한다
2020.08.11 00:00
수정 : 2020.08.10 23:59기사원문
기초과학연구원(IBS)은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김기문 단장팀이 소리가 물리현상뿐만 아니라 화학반응까지 조절할 수 있음을 밝혀내고 그 결과의 시각화에 성공했다고 11일 밝혔다.
실제 자연과 같은 비평형상태에서 소리로 화학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고주파로 화학반응을 조절하려는 연구가 시도된 적은 있었다.
연구를 주도한 황일하 연구위원은 "용액의 산성도는 전체적으로 동일하다는 상식을 뒤엎은 흥미로운 결과"라며 "소리로 산화·환원 또는 산·염기 반응을 일으켜 물리적 가림막 없이도 용액 내 화학적 환경을 서로 다르게 구획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물의 움직임만 주목한 기존 연구와 달리 물의 움직임에 의한 공기의 용해도 변화에 주목했다. 소리로 물결의 패턴을 제어해 용해도를 조절한다면 하나의 용액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학적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진은 이를 시각화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했다. 우선 스피커 위에 유리 접시를 올려둔 뒤 소리가 접시 안의 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했다. 이후 연구진은 지시약을 이용해 소리가 만들어낸 물결이 화학반응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소리가 만든 미세한 상하 진동으로 접시 안에는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만들어졌다. 동심원 사이 간격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좁아졌으며,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 소리의 주파수와 그릇의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물결의 패턴을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은 산성도(pH)에 따라 색이 변하는 지시약인 BTB 용액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BTB 용액은 염기성에서는 파란색, 중성에서 녹색, 산성에서 노란색을 띠는 지시약이다.
접시에 담긴 파란색 BTB 용액을 스피커 위에 놓고 소리를 들려주며 이산화탄소에 노출시켰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면 용액이 산성으로 변하는데, 소리를 들려주자 용액 속에 파란색, 녹색, 노란색이 구획별로 나눠 나타났다. 물결로 인해 기체의 녹는 양이 부분적으로 달라지며 산성, 중성, 염기성이 공존하는 용액이 만들어진 것이다.
연구진은 또 파란색이지만 산소와 반응하면 무색으로 바뀌는 염료인 바이올로젠 라디칼을 접시에 담고 스피커 위에 얹은 후 소리를 재생했다. 물결에서 움직이지 않는 마디 부분은 파란색을 유지하는 반면 주기적인 상하운동을 하는 마루와 골(가장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은 산소와 반응하며 무색으로 변했다. 공기와 접촉이 활발해 산소가 더 많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 11일자(한국시간)에 실렸다. 또 연구 중 촬영한 이미지는 제5회 IBS Art in Science 전시회에 '소리 붓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