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기름값에 치료비…라이더 '연봉 1억'은 신기루

      2020.11.19 07:00   수정 : 2020.11.19 10:55기사원문
서비스일반노조 배민라이더스지회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집회를 마친뒤 오토바이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2020.5.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3일 오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별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2020.11.3/뉴스1 © News1 김유승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배송노동자 쉼터에서 이륜차 배송노동자들과 근로실태 점검 및 보호대책 현장간담회를 갖고 있다.

2020.11.3/뉴스1 © News1 국회사진취재단


[편집자주]비대면이 일상화된 코로나19 여파로 배달업이 아이러니하게 전성시대를 맞았다. 올해 배달 거래액은 3분기 만에 11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배달산업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배달기사 처우 문제, 식당들의 수수료 및 광고비 부담, 일회용기 사용으로 인한 환경파괴 등 다양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기자가 직접 배달을 체험해보고 배달업체·배달기사·식당·소비자 등을 다각도로 취재해 라이더 전성시대가 풀어야 할 숙제를 4회에 걸쳐 짚어본다.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배달 라이더는 스마트폰 배달 주문 앱의 등장에 코로나19 확산이 겹치면서 사회적 주목도가 급증한 대표 업종이다. 사람들은 이제 '배달의 전통 강자' 중국집뿐만 아니라 브런치, 커피, 콧대 높은 맛집까지 배달로 주문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기조로 경기가 침체했지만 언택트와 궁합이 맞는 배달 주문은 오히려 불이 났다. 사회 전반에서 실업자가 늘었다는 목소리와 달리 고용을 창출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라이더가 '연봉 1억'을 번다며 취직을 유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면 라이더들은 '연봉 1억'이 사기라고 말한다. 라이더들은 왜곡된 임금 체계, 불안정한 고용에 불안과 부당함을 호소한다. 관련 법이 미비해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빛이 강한 만큼 어둠도 짙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사회변화는 새로운 노동인권 사각지대를 발생시킨다. 다양한 고용형태 노동자들이 모두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배달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배달 폭증'에도 웃지 못하는 라이더들

코로나19 이후 음식 배달 시장이 커졌다는 것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동안 모바일쇼핑을 통해 음식서비스를 거래한 금액은 4조4636억원이다. 이는 전년동분기 2조4338억원 대비 83.4% 증가한 수치다.

배달 라이더들 역시 늘었다. 통계청의 '2020년 상반기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배달 라이더를 포함한 배달원 취업자는 37만1000여명으로 전년 동기 34만3000여명보다 7.9%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건당 수수료 방식으로 임금을 받는 라이더들의 수익이 올랐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연봉 1억"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다고 라이더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지난 4일 조사해 발표한 음식배달 노동자의 월평균 수입은 295만1000원에 불과하다.

실제 수익은 더 낮아진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취급받는 특수고용노동자에 속하는 라이더들은 오토바이 구매(렌트)부터 기름값, 사고 발생 시 치료 비용 등 근무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비용까지 본인이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음식배달 노동자 17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86.2%의 라이더들이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위임·도급계약을 맺고 있다"고 답했다. "4대 보험이 적용되는 근로 계약을 맺었다"고 답한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근무로 생기는 비용을 자가 부담하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 라이더들 지위는 개인 사업자가 아닌 노동자에 가깝다. 개인사업자라면 자기 판단과 계획에 따라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는 지역별 담당 매니저가 라이더들에게 각종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이 현실이다. 위치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매니저들은 움직임이 없으면 독촉을 보낸다. 라이더들은 휴가도 서로 겹치지 않도록 조를 짠다.

◇ 프로모션과 AI 자동배차…매시간 바뀌는 취업규칙

법적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라이더들은 취업규칙도 매번 바뀐다. 임금·수당이나 업무 시간, 근무 방식 등을 결정하는 취업규칙은 노조나 전체 노동자 과반의 동의 없이는 바꿀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라이더들은 매시간 다른 임금 체계에 직면한다. 배달 중개 앱들은 수시로 프로모션(판촉)을 제공하거나 빼면서 배달 단가를 변경한다. 라이더들이 근무를 기피하는 비 오는 날에 프로모션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신규 사업이나 서비스에 라이더들을 유인하기 위해 프로모션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알고리즘이나 인공지능 자동배차 시스템도 새로운 취업규칙에 해당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 3일 라이더유니온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동배차 시스템이 오히려 동선을 비효율적으로 잡거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라이더의 근무부담을 높이지만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공지능이 오토바이 진입이 금지된 곳이나 계단이 있는 구간으로 길을 안내하고, 가까이 있는 라이더를 배제하고 더 멀리 있는 라이더에 주문을 배정한다는 것이다. 한 라이더는 "현장에서 봤을 때 인공지능은 학습능력이 1도 없다"고 단언했다.

무턱대고 자동배차를 거절하기도 어렵다. 거절을 반복하면 불이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라이더는 "자동배차를 몇 번 거절했더니 자동배차와 일반배차 모두 콜이 '0'이었다"며 "우연히 같은 구역 동료 앱을 봤더니 콜이 80개가 잡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 공제회로 자구책 찾는 라이더들…"법적 근로자 지위 보장해야"

근로자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는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라이더들이 스스로 자금을 모아 상호부조 하는 공제회를 통해, 근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대신 처리하려는 것이 대표적이다.

라이더유니온은 사고 발생 시 오토바이 수리 비용을 공제회를 통해 지급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을 대신할 수 있는 공제회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관련 절차를 거쳐 내년까지는 시범사업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설문조사 결과 라이더 10명 중 7명이 '공제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며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이 라이더들에게 당장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제회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보호장치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라이더들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할 필요성 역시 꾸준히 제기된다. 산재보험 등 각종 보험을 도입하거나 취업규칙을 쉽게 바꾸지 못하게 해 안정적인 삶을 꾸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일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당·정·청은 지난 12일 배달 라이더를 포함한 '필수노동자'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적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필수노동자란 보건의료나 돌봄, 배달업, 택배 종사자 등 근무여건이 취약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노동강도가 늘어 산재 위험이 가중된 노동자들을 이르는 말이다.

더욱 확실한 방법으로는 라이더를 포함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규정하는 것이 꼽힌다.
산재나 고용보험뿐만 아니라 취업규칙이나 임금의 잦은 변동 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별적으로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근로시간을 측정하거나 관리·감독하기 비교적 어려운 만큼 노동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노동시간을 따지지 않거나 재량근로시간제가 적용되는 경우도 많다"며 "업무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차이가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를 가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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