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수술실 동시수술, 조무사 혼자 지혈··· '무죄' 다투는 의료진

      2021.03.13 11:16   수정 : 2021.03.13 11:1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환자에게 알리지 않고 수술 도중 집도의 대신 경험이 일천한 의사가 대신 들어오는 ‘공장식 유령수술’로 2016년 사망한 권대희씨 사건 공판에서 의료진이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간호조무사에게 지혈을 맡겼더라도 의료법이 금지한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란 주장이다.

수술 중 발생한 3500ml 과다출혈로 권씨가 사망에 이른 가운데, 동시에 다른 환자를 수술하느라 30여분간 간호조무사 홀로 지혈을 한 것이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정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재정신청 인용, 무면허 의료행위 쟁점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최창훈 판사는 9일 의료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받는 ㅈ성형외과 전 원장 장씨와 이 병원 봉직의사 신씨, 마취과의사 이모씨, 간호조무사 전모씨에 대한 5차 공판을 진행했다.

기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만 받았던 장씨는 법원이 지난해 10월 유가족이 접수한 재정신청을 인용결정하며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 혐의도 함께 받게 됐다.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에도 담당 수사검사가 불기소 처분한 결정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에 따른 것이다.

쟁점은 고 권대희씨 사망 당시 집도의인 장씨가 뼈만 절개하고 나간 뒤 인턴 경력조차 없었던 신씨가 수술을 이어받았고 신씨 역시 수술실을 나가 간호조무사 홀로 권씨를 30여분간 지혈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대목이다. 법상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는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데, 통상 환자보다 출혈이 많았던 권씨를 간호조무사 혼자 지혈한 행위가 위법한지를 따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반 형법 위반과 달리 의료법 위반이 인정되면 의사면허 정지 등의 처분이 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이날 장씨는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무면허 의료행위 관련 혐의는 부인했다. 장씨 측 변호인은 “지혈은 의료행위지만 간호조무사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씨 측 변호인 역시 “간호조무사가 누르고 있었던 건 법리적으로 무면허행위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며 “공소사실에서 면밀히 (환자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부분도 사실관계와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실제 지혈했던 간호조무사 전씨 측은 의사들의 감독 하에서 관련 행위를 했다며 역시 무죄를 주장했다. 전씨 측 변호인은 “포괄적 위임이나 판단 여지를 준 게 없이 단순히 압박하라는 지시만 받았다”며 “의사들의 감독 하에 압박지혈 행위를 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檢 "이런 수술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해당 병원에서 이뤄진 공장식 유령수술이 있어서는 안 되는 행위라는 입장이다. 공판검사는 “이런 수술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향후 추가 증인신문이 이뤄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재판부는 추가 증인신문 등 몇 차례 공판을 거쳐 심리를 이어갈 예정이다. 신씨 등 피고인 측 역시 서면으로 무죄 취지를 항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재판정에는 권씨 모친인 이나금씨가 찾아 재판과정을 지켜봤다. 이씨는 장씨와 신씨 등이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억눌린 울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씨는 재판 뒤 “담당 공판검사가 근본적으로 공장식 동시수술 방식이 문제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지적했다"며 "5년째 싸우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해 있지만 이제라도 관련 의료진이 제대로 처벌받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반면 권씨 사망과 관련해 이씨에게 사과를 전하지 않고 있는 신씨는 재판 뒤 “권씨 사망 당시 그런(공장식 유령) 수술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느냐”는 질문에 답을 내놓지 않고 법원을 빠져나갔다.

한편 권대희 사건은 지난 2016년 경희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 권대희씨(당시 25)가 군 전역 후 모은 돈으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은 뒤 중태에 빠져 49일 만에 숨진 사건이다. 수사결과 권씨 수술 당시 동시에 진행된 수술만 3건으로, 집도의와 마취과 의사, 그림자의사가 수술방을 돌아다니며 연속으로 수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사가 자리를 비운 가운데 간호조무사 홀로 수술실에 남아 권씨를 지혈한 시간만 35분에 이르렀다. 권씨는 이 같은 사실을 수술 전에 듣지 못했다. 병원 의료진 일부는 1심에서 이 같은 수술행태를 ‘분업화’라며 업무상 과실도 없다고 다퉈왔으나 재정신청 인용 뒤 무면허 의료행위는 부인하고 업무상 과실은 인정하는 취지로 입장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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