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골만 재확인한 美中 첫회담, 신냉전 부활 우려

      2021.03.21 12:12   수정 : 2021.03.21 12:12기사원문

【베이징=정지우 특파원】미국과 중국의 첫 고위급 회담이 상호 갈등의 골만 재확인한 채 공동 성명 발표도 없이 끝나면서 향후 신냉전체제가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 비핵화와 기후변화 등 특정 분야에선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긴 했지만 신장위구르자치구, 홍콩,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 핵심 쟁점에선 상대방 탓으로 돌리며 앞으로 관계도 험난할 것임을 사실상 예고했기 때문이다.

여기다 미국은 고위급 회담 직후 인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은 접경지역에서 수차례 군사적 충돌까지 겪는 등 첨예한 대립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인도 편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소득 없이 美中 ‘네 탓’만
21일 중국 외교부와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측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측 양제츠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8~19일(현지시간)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세 차례에 걸친 2+2 회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통상 국가간 고위급 회담 후 발표하는 공동 성명은 없었다. 오히려 양국은 회담 첫날부터 모두 발언에서 상대 정치체계를 직설적으로 비난하며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미국은 중국이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질서를 흔들어 지구촌이 약육강식 정글로 변할 것이라고 비판했고 중국은 미국이 자국 내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나라들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거친 비아냥거림을 쏟아냈다.


또 미국은 신장, 홍콩, 대만에 대한 중국의 행동을 문제 삼았고 중국은 ‘흑인 학살’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미국 내 인권이 최저 수준이고 개선을 요구했다.

양국 모두 발언은 각각 2분으로 약속됐지만 상대 발언에 격분하면서 1시간 넘게 계속되기도 했다. 블링컨 장관은 “규칙에 기반을 둔 질서가 없는 세계는 힘의 정의가 되고 승자가 독식하는 세계이자 훨씬 더 난폭하고 불안정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양 정치국원은 “미국이 군사력, 금융의 우위를 외국압박에 악용하며 국제통상의 미래를 위협하려고 국가안보 개념을 남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담 후 퇴장하려는 취재진을 불러 세우며 상대방을 재차 비난하는 극히 이례적인 상황도 그대로 공개됐다.

1박2일간의 고위급 담판은 결과적으로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미국은 회담 후 광범위한 이슈에서 힘들고 단도직입적인 협상을 했으며 전진할 방법을 찾기 위해 동맹, 파트너들과 협의하겠다는 등 원론적 언급에 머물렀다.

중국 역시 각자 대내외 정책과 양자 관계에 대해 솔직하고 건설적인 교류를 했고 상호 대화는 유익했으며 상호 이해 증진에 도움이 됐다는 외부 선정용 표현에 그쳤다.

다만 북한 문제와 기후변화 등에선 비슷한 의견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외신은 블링컨 장관과 미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북한과 이란, 아프가니스탄, 기후변화 등 광범위한 의제가 테이블에 올라왔으며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분야가 있는지 탐색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냉전 초기와 비슷...양극화 우려
불발탄에 그친 첫 미중 고위급 회담에 대해 미중 관계 전문가들은 냉전 초기를 연상케 한다면서 세계 양극화를 우려했다.

싱가포르국립대 총자이안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냉전 초기 미국과 구소련간 회담과 같은 방향이 있었다”면서 “조 바이든 미 행정부 기간 긴장은 계속될 것이며 아시아 등 각국은 상황 추이에 계속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 대학 제임스 찬 교수는 “양측이 가까운 장래에 이견이 있는 이슈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미중간 악감정을 해소하지 못하면 양극화된 세계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공교롭게도 미국은 회담 직후 인도에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보내 군사·안보 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인도의 장관급 고위 인사 대면 접촉은 처음이다.

인도와 중국이 카슈미르 등 접경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빚고 있는 점, 미국이 일본·인도·호주 등과 4개국 협의체 쿼드를 강화하는 점, 미중 고위급 회담이 진흙탕 상호 비판으로 끝난 점, 인도가 전통적으로 비동맹 중립 노선인 점 등을 감안하면 인도와 우호를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북핵, 기후변화 등 협력 여지 남아
그러나 디커플링(탈동조화) 전조 증상으로 해석하기는 아직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양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치명타를 입었고 회복을 위해선 협력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또 북핵 문제, 기후변화, 코로나19 국제사회 공동 대응 등 다시 중지를 모을 기회도 남아 있다.

요제프 그레고리 머호니 화둥 사범대학 교수는 “향후 몇 주간 논쟁적인 이슈에 대한 공개적인 대응 움직임은 많이 보이지 않겠지만, 무역전쟁 등을 위한 준비 작업이 조용히 이뤄질 것”이라며 “긍정적 전망이 없었다면 중국 측이 알래스카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국 외교계의 거물인 헨리 키신저(98) 전 국무장관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포럼(CDF)에 “세계의 평화·번영이 미국과 중국간 이해에 달려있다”는 내용의 화상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이던 1971년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해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최근까지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다는 등 중국을 오가며 미중 갈등 완화를 강조해 왔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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