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수술 감독 못한다는 정부, 수술실CCTV법은 '반대'

      2021.05.29 14:16   수정 : 2021.05.29 14:1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1년째 국회 첫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수술실CCTV법 통과가 뜨거운 관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사실상 수술실 내 의료범죄를 제어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 유령수술 등 의료범죄 상당수가 치료목적이 아닌 의료보험 비급여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해 행정적으로 개입해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수술실CCTV법안에 대해선 수술실 입구와 내부 설치를 병원이 직접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병원에 선택권을 주면 알아서 내부에 달 곳이 있겠느냐는 비판이 쇄도한다.

보건복지부는 비용 지원이 있을 경우 설치의향이 있는 의료기관이 전국 약 400여곳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도 함께 밝혔다.



보건복지부, 유령수술 감독 불가능 인정

29일 국회 보건복지위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26일 열린 제1법안심사소위 수술실CCTV 공청회에서 정부 관계자가 유령수술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자 동의 없이 집도의 대신 무자격자나 다른 의사가 대신 들어와 수술을 하는 유령수술이 현재도 일선 의료기관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보고에도 주무부처가 이를 막을 역량이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날 공청회를 진행한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 이창준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관에게 “복지부에서 감독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없느냐”고 묻자 이 정책관은 사실상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 정책관은 “수술 방식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걸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그런 수술 방식이 의학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검토도 있어서 행정적으로 조금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개선될 수 있도록 복지부 차원에서도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 불거진 그랜드성형외과 유령수술 논란 이후 보건복지부가 2015년 성형외과 업종에 한해 유령수술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약속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노력을 언급한 것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보건복지부가 그간 자율적으로 운영돼온 수술실CCTV 실태파악과 점검, 법적 근거 마련 등의 조치를 전혀 해오지 않았음이 확인된 바 있다. <본지 3월 6일. ‘[단독] 수술실CCTV 찬성 달랑 1... "밖에 달자" 의견 좁혀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감독 못하는데 CCTV는 안 된다는 정부

심지어 보건복지부는 수술실CCTV 법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올해 2월 들어 병원이 수술실 입구와 내부 중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해 CCTV를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안을 정부 공식입장으로 채택하기까지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역시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현안이 어디서 쟁점이 형성되고 있고 어떤 갈등이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수술 현장 자체를 CCTV로 보여주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것 같다”며 보건복지부 입장을 되풀이해 비판에 직면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전봉민 무소속 의원이 유령수술을 보건복지부가 감독하는 게 가능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재차 질의하자 이 정책관은 “(주로 발생하는 유령수술이) 비급여로 이루어지는 성형외과 수술 부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의사 출신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령수술이 주로 발생하는 영역이 필수의료인지, 비급여 영역인지를 묻자 이 정책관은 다시금 “대부분 비급여 영역”이라며 “수술량이 많은 병원에서 급여에 따른 수술도 (유령수술로) 이뤄지는 걸로 판단”한다고 답했다.

이 정책관은 병원규모와 관련해서는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지만 PA(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를 통해서 그런 부분적인 수술에 따른 보조행위가 이루어지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며 불법 여지가 있는 의료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다만 유령수술 실태와 관련한 통계작성 및 전면적인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술실CCTV는 유령수술과 성범죄 등 수술실에서 발생하는 의료범죄를 차단하는 목적에서 마련된 법안이다. 의료사고 발생 시 입증책임을 지는 의료소비자가 객관적 증거를 확보할 필요도 근거가 됐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에선 수술실CCTV 설치로 발생할 수 있는 갖은 부작용을 들어 법제화에 반대하는 상태다. 수술장면 촬영으로 의료행위가 위축될 수 있고 민감한 부분을 찍은 영상의 유출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다.

다만 최근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는 유령수술 사건에 의사를 제외한 다른 직역에선 수술실 내부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모이고 있다. 간호사 등 다양한 의료계 직역이 모인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역시 수술실 내부 CCTV 의무화에 찬성입장을 정리한 상태다.

처벌無 아산병원 엽기범죄 인턴

밀폐돼 정보가 외부로 나가지 않는 수술실 범죄 특성상 객관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비판은 수술실CCTV 입법여론에 힘을 싣고 있다. 정보가 차단된 폐쇄적 공간에서 지배적 위치인 의사가 불법행위를 적극 또는 소극적으로 감출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인턴 사례는 병원에서 불법행위가 어떻게 감춰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3월 아산병원은 산부인과 인턴으로 근무하던 A씨에게 정직 3개월의 솜방망이 처분을 했는데, 그 사유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당시 A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 상태에서 대기 중이던 여성 환자의 음부를 반복적으로 만지는 등 불법행위를 다수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징계위원회 보고서엔 “처녀막도 볼 수 있나요”, “(절제한) 자궁을 먹어봐도 되나요”, “저는 00를 좀 더 만지고 싶어 여기 서 있겠습니다” 등의 문제적 발언도 여러 건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피해자가 마취상태로 본인의 피해사실을 알지 못해 법적 대응에 나서지 못한 관계로 형사사건으로 비화하진 못했다. 사태를 파악한 병원이 해당 인턴의 불법행위를 고발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솜방망이 처분만 했던 병원은 비판여론이 커진 뒤에야 문제인턴의 수련을 취소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력 상급종합병원이 의사들의 명백한 불법행위를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알려지며 의료계에선 자조까지 흘러나왔다.

수도권 공공의료원에 근무하는 A교수는 “의사들도 감정이 있는데 이런(아산병원 인턴 사례) 사람까지 감싸고 해서는 안 된다고 동의하는 부분이고, 사건이 나왔을 때도 우리사이에서 안 좋은 얘기가 많이 나왔다”며 “당장 병원 입장에선 워낙 명예가 떨어지고 위신이 서지 않으니까 (적극적으로 처리를 못한 게 아니겠나)”하고 전했다.

이밖에도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가 규제되지 않고 있는 이유로 성범죄 전과가 있는 의사가 유사 범죄를 저질러 다시 처벌받거나 환자가 전과를 모른 채 진료를 받는 사례도 잇따른다.

이와 관련해 수술실CCTV법과 함께 환자보호 3법으로 불리는 범죄의료인 면허규제 강화, 행정처분 의료인 이력공개 법안도 발의됐으나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다. 특히 환자보호 3법 입법을 주도해온 환자권익연구소와 의료범죄척결 시민단체 닥터벤데타가 고발한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역시 법사위에서 이들 법안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2018년 경기도 파주시 한 병원에서 무자격자 유령수술로 환자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사건을 수임해 마치 정상적인 의료인이 수술을 한 것처럼 꾸미라는 취지로 자문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시민단체 고발을 통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본지 5월 3일. ‘[단독] '2명 사망' 유령수술 은폐?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경찰 고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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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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