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변이로 아시아 신흥국 회복세 꺾이나
2021.08.03 06:40
수정 : 2021.08.03 07:23기사원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변이가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이하 현지시간) 경고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 급속한 신규감염 증가세 속에 강도 높은 방역에 재돌입하고, 중국과 한국 등 수출주도 경제는 해외 수요 둔화와 공급망 위축 여파로 휘청거리고 있다.
■ 아시아, 델타변이에 휘청
아시아 국가들은 지난해 팬데믹 당시에는 모범적인 방역으로 충격을 줄일 수 있었지만 이후 백신 확보에 실패해 델타변이 확산세에는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봉쇄밖에 길이 없어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바이러스 위협은 수개월 안에 완화되겠지만 경제적 충격은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WSJ은 2일 분석기사에서 세계 경제회복의 중추 역할을 했어야 할 아시아 지역이 델타변이 확산 억제를 위한 강도 높은 방역 후폭풍을 맞아 이제 세계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됐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호된 대가를 치루면서 백신 사재기에 나섰던 미국, 유럽 국가들과 달리 백신 확보 경쟁에서 뒤처졌던 아시아 국가들은 델타변이 확산 속에 사회적 거리두기, 모임 금지, 봉쇄 등 방역 강화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
특히 이번 델타변이 확산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돼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사실상 전면봉쇄에 들어간 상태다.
이는 곧바로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
IHS 마킷에 따르면 동남아 7개국의 지난달 제조업 활동은 지난해 5월 이후 10개월만에 가장 가파른 활동 둔화를 겪었다.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특히 두드러진 충격을 입었다. 두 나라 모두 최근 들어 신규감염과 사망자 수가 급증했다.
해외 수출에 의존하는 중국과 한국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팬데믹 기간 집에 틀어박힌 소비자들이 자전거부터 가정용품, 전자제품, 가구 등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쇼핑을 대폭 늘리면서 특수를 맞았던 한중 두 나라는 최근 성장 엔진이 식고 있다.
중국에서는 7월 제조업지수가 1년여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외 수요가 식고 있음을 시사한다.
■ 사상최고 호황 유럽
반면 백신을 조기에 개발하고 확보해 높은 백신 접종률을 나타내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사정은 다르다.
성인 백신접종률이 마침내 목표치 70%를 돌파한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4분기 들어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이날 공개된 공급관리협회(ISM)의 7월 제조업지수도 나쁘지 않았다. 6월에 비해 1.1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며 경기정점이 지났다는 우려를 높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절대치는 59.5로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제조업 활동 확장세가 지속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유럽은 모처럼 호황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의 2·4분기 GDP 성장률은 사상최고 수준에 육박했고, IHS마킷이 공개한 7월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제조업 지수도 통계집계 24년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고용, 신규주문 등이 모두 통계 작성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 백신이 명암 갈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백신 접종률은 신흥국들과 유럽·미국 간에 2배 차이가 난다.
미·유럽 선진국들의 백신 접종률이 40%에 육박하는 반면 신흥국 백신 접종률은 그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동남아 국가들 상당수는 20%에도 크게 못미친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8%, 태국은 6% 수준에 그친다.
나틱시스의 트린 응우옌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는데 집중한) 2020년 전략은 지속불가능한 전략"이라면서 "그저 시간만 벌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 봉쇄·원료 부족 등 총체적 난관
동남아 국가들의 방역조처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6월초부터 의류 업종을 비롯한 비필수 업종의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국제 공급망이 촘촘히 짜여진터라 한 나라의 가동중단은 국제 공급망에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
인도네시아의 한 의류 공장은 핵심 시설로 인정받아 봉쇄 조처를 피했지만 베트남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받는 원료가 제때 들어오지 않아 정상적인 가동이 불가능하다.
베트남은 델타변이 확산 속도를 늦추기 위해 봉쇄 중이다.
한국은 7월 수출이 1년 전보다 29.6% 증가하기는 했지만 6월 수출증가율 39.8%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전망도 밝지 않다. 공급망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상적인 공장 가동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HSBC 아시아경제 리서치 부문 공동 책임자 프레드릭 뉴먼은 "바이러스의 즉각적인 위협을 몇개월 안에 헤쳐나간다 해도 그 경제적 충격은 제법 오랜 시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 공급망 차질 더 오래 간다
백신접종률이 낮은 아시아 지역에서 델타변이가 지금처럼 빠르게 퍼지면 더 장기적인 경제충격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아시아 지역이 글로벌 제조업의 핵심 기반이자, 국제공급망의 핵심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태국 등의 봉쇄조처는 이미 심각한 충격을 낳고 있다.
이미 차질을 빚고 있는 국제공급망은 더 큰 충격파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정상화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팬데믹에 따른 경제적 충격으로 인해 통화완화 정책을 더 오래 지속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올 후반 채권매입 점진 축소, 이른바 테이퍼링을 시작으로 통화완화 정책을 되감기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아시아의 통화정책 정상화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해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함께 외환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델타변이 확산이 세계 경제, 특히 아시아 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