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미투' 이토 시오리, 2심서도 승소했지만...

      2022.01.25 23:20   수정 : 2022.01.25 23:20기사원문
【도쿄=조은효 특파원】 일본판 '미투 운동의 상징'이 된 이토 시오리(프리랜서 언론인)가 야마구치 노리유키(전 TBS 기자)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2심에서도 승소했다.

도쿄고등법원은 25일 "합의된 성관계였다"는 야마구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에게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금 지불을 명령했다. 손해배상액은 1심보다 2만엔 증액된 332만엔(약 3495만원)이다.



재판부는 다만, 이토가 저서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피해 당시, 의식을 잃는 과정에서 '데이트 강간 약물'이 사용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부분은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고, 이런 주장이 계획적 성범죄로 비칠 수 있어 되레 야마구치의 명예훼손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며 이토에게 위자료 55만엔(약 579만원)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성폭행에 대한 배상금은 1심보다 늘어났으나, 피해 과정에서 약물이 사용됐을 것이란 주장이 야마구치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해서, 결과적으로는 쌍방 배상 판결의 모양새가 됐다.


일본의 포털 사이트 등 온라인에서는 "고법에서 성폭력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나왔는데 어째서,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냐", "2심에서 승소했지만, 가해자의 명예훼손에 배상 판결이 내려진 것이 의문이다"라는 등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지난 2015년 외신 매체의 인턴 기자였던 이토는 일본의 대형 민영방송사인 TBS 소속 기자인 야마구치와 진로 상담을 겸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2차에서 기억이 끊겼고, 의식을 회복했을 땐 호텔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도쿄지검은 그러나 지난 2016년 7월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토는 이후 2017년, 일본 사회에서는 드물게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며 피해 사실을 적극 알리고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당시, 미국 등 주요국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이 사건은 단숨에 일본 사회의 이목을 사로잡아 일본판 미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는 가해자 야마구치가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와 개인 연락처를 공유하던 몇 안 되는 기자이기 때문에 체포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일본 정치권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2018년부터는 영국으로 이주, 주로 해외에서 취재 활동을 했다. 일본의 고독사 문제를 다룬 보도로 2018년도 뉴욕 페스티벌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은상을 받았으며, 시에라리온의 여성 할례(성기 절제)를 취재해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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