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민 수리연 소장 "수학, AI의 핵심…투자 턱없이 부족해"
2022.03.14 08:37
수정 : 2022.03.14 08:37기사원문
국내 유일 수리 전담 연구소 소장 취임 1주년 맞아 인터뷰
"4차 산업혁명 핵심·코로나19 사태로 수학 학문에 대한 관심 점화"
"임기 내 '감염병수리모델센터' 설립 목표…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 박차
"수리연 인력·예산 꼴찌 수준…투자 획기적 확대 절실"
[서울=뉴시스] 이진영 기자 = 수학(數學)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의 기본이 수학이기 때문이다. AI는 궁극적으로 삼각함수, 확률, 미적분 등 수학 원리들을 결합한 알고리즘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국내 유일하게 수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있다. 수학을 통해 산업과 과학기술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로 2005년 10월 출범한 기초과학지원연구원(IBS) 부설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가 그곳이다. 2028년까지 우리나라 산업수학 연구 글로벌 경쟁력 10위권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오는 15일자로 취임 1주년을 맞는 김현민 제6대 수리연 소장(부산대 교수)을 지난 4일 만났다. 김 소장은 "글로벌 AI 개발 경쟁과 코로나 확산예측 모델 등으로 부쩍 늘어난 수학 학문에 대한 관심의 모멤텀을 잘 이용해 수십 년간 계속돼온 입시 위주의 수학 교육, 인재 양성, 활용 풍토를 바꾸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수학으로 해결된다'는 말처럼 수리연은 코로나 등 감염병 발생 확산 경로 예측 및 수리 모델 개발을 비롯해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환기시스템 고장 예측, 빙상 용융과 해수면 상관관계 및 기후변화 영향, 사물인터넷(IoT) 기기 알고리즘 안전성 분석, 한국수력원자력 고리1발전소 '핵연료 삽입체' 위치 변경 최소화 솔루션 등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수학을 통해 찾고 있다.
일반인들에게까지 수리연이 이름을 알린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19다. 2020년 9월부터 매주 코로나19 유행 규모와 백신 접종률에 따른 확산 추이를 예측해 제공, 방역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 김 소장은 "정부가 수리적 모델에 기반한 정책 결정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됐다“며 "선진국은 정책 예측에 감(感)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수리 모델을 이미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임기 3년 동안 한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수학적 연구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았다.
김 소장은 "코로나19 확산이 종료된다고 하더라도 제2, 제3의 코로나가 발생할 수 있고, 감염병 대유행 주기 또한 점차 빨라지고 있다"면서 "코로나 종식이 전염병 및 감염병 사태의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가 시작이며, 대비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의료분야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영향 등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쌓기 시작했다"면서 "감염병에 대한 다양한 수리적 모델 개발 및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임기내 '감염병수리모델센터' 설립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김 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 연구, 더 나아가 수리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빅데이터, 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기본이 되는 학문이 수학이라는 데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라며 "가령 AI는 수학적 방식으로 알고리즘화해 문제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수학이 AI의 기본이며, 수학을 잘하는 사람, 즉 수학의 논리 구조와 과정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AI를 잘 쓰고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수학 연구의 중요성은 커지는 데 비해 국내 전문 인재 육성과 투자는 한참 뒤처져 있다는 게 그의 아쉬움이다. 실제 우리나라 수학 경쟁력을 보면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있다. 2020년 기준 주요국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수학논문 수를 국가별로 비교해 보면 한국은 1352편으로 14위다. ▲중국 1만5422편(1위) ▲미국 1만858편(2위) ▲프랑스 3598개(3위) ▲독일 3534(4위) ▲영국 2980편(5위) ▲일본 2157편(10위) 등과 격차가 크다. 또한 국제수학연맹 최고 등급을 이룩한 12개 국가 중에서 아직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하지 못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는 수학 전문가를 키워내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AI 연구가 발전하면 할수록 고도화된 수학적 접근이 필요할 텐데,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수학 인재 기근에 시달릴 것이고, 결국 한국이 세계적인 AI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국가 수리연구의 중심에 있는 수리연 또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수리연의 정규직 연구 인력은 37명에 불과하고, 예산도 전체 출연연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인 100억원 남짓에 머문다는 것. 또한 제대로 된 독립 청사도 없다고 호소했다.
김 소장은 오는 2025년까지 수리연 예산을 300억, 연구인력도 100명까지 획기적으로 늘리는 '3개년 추진전략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들어가는 입시 목적 외에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며 ”수리연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다양한 연구결과를 내놓을수록 한국의 미래인 아이들이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고, 학생들의 이런 궁금증만 해결하더라도 수리연에 대한 지원 확대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수포자'를 양산하는 현행 수학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개선하고 향후 국가적 수학 인재·수학산업 육성 추진 방안에 대해 국가적·사회적·학문적인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도 목소리를 보탰다.
김 소장은 "한국 학생들이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등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수학 실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며 "입시 수학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의 절반만 수학인재 육성과 수학산업에 투자하더라도 많은 인재들이 수학 자체, 또는 수학과 다른 분야를 융합해 고부가치를 창출하는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김 소장 프로필
▲1966년 출생 ▲부산대 수학과 ▲영국 빅토리아 대학 박사 ▲영남수학회 부회장(현) ▲대한수학회 산업수학위원회 위원(현) ▲부산대 교수(현)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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