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원자재값, ‘하도급대금 분쟁’도 불붙였다
2022.04.28 18:20
수정 : 2022.04.28 18:20기사원문
#.회로기판 제조업체인 A사는 B사와 C사로부터 모듈 제조와 납품을 위탁받은 협력업체다. A사 제조 모듈의 원자재는 구리다. 구리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채굴 과정에 어려움이 발생하면서 2020년 하반기부터 가격이 급등했다.
코로나 지속에다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주요 원자재 값이 급등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 가격정보 동향 등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주요 원자재의 연평균 가격상승률은 전기동(구리)이 50.6%, 알루미늄 53.5%, 니켈 75.4%, 주석 75.7%였다. 이에 따라 A사와 B·C사의 경우처럼 하도급업체와 원청업체 간 하도급대금 조정 관련 분쟁도 급증하고 있다.
■하도급대금 분쟁, 올 1·4분기 250%↑
28일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원자재 등 공급원가 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 조정 분쟁 사건은 지난 한 해 33건이 접수돼 2020년(14건)보다 2배 넘게 늘었다. 접수건수 기준 135.7% 늘어났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원자재 값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올해 1·4분기엔 7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은 2건이었다. 증가율은 250%다.
주요 접수 사례는 원청업체가 원재료 값 상승에 따른 하도급대금 공급원가 상승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하도급업체와 협의를 거부하거나, 조정신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 등이다.
2019년부터 3년간 조정원에 접수된 공급원가 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 분쟁조정 신청 48건 중 성립건수는 33건으로 성립률은 68.8%였다. 2021년은 조정요건이 충족된 21건 중 18건이 성립(85.7%)됐다.
성립건 조정금액은 약 189억원이다. 연도별로는 2019년 4억원, 2020년 54억원, 2021년 127억원으로 하도급업체 피해구제금액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원자재 값 불안 지속…하청업체 ‘골병’
공정거래조정원에 접수된 하도급 분쟁 건수는 사실 미미하다. 원청, 하청으로 묶인 이른바 '갑을' 거래관계에서 조정신청을 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거래단절에 대한 우려까지 안고 올 1·4분기 7건이 신청됐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중기 현장의 2, 3차 협력업체 경영상황은 악화일로다. 지난달 말 중기중앙회가 중기 34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납품단가 제값 받기를 위한 중기 긴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자재 값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전부 반영받는 중기는 4.6%에 불과했다. 전부 미반영이라고 응답한 중기도 49.2%에 달했다. 원청업체들이 관행적으로 단가를 동결하거나 경기불황에 따른 부담을 하청업체에 전가하고 있어서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납품단가 현실화"라며 "새 정부에서 반드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와 하도급법을 관할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연동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정책방향을 잡았다. 연동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었지만 시장원리 훼손 등의 논리가 우세해서다. 예를 들면 원청업체가 비용절감을 위해 국내 중기와 거래를 끊고 해외업체와 손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인수위는 '조정협상 지원' 정책으로 선회했다. 중기중앙회나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하청업체를 대신해 원청업체와 납품단가 협상을 대행하는 제도를 활성화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납품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원자재 값이 10% 이상 상승할 때만 협상대행을 허용하는 '10%룰'은 폐지키로 했다. 다만 전제는 조정신청은 업체가 직접 해야 한다.
중기 현장은 현재와 같은 원자재 값 불안 사태가 지속될 때 현장 셧다운이나 폐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 조정협상지원 정책의 한계도 명확하다고 했다. 중기업계 관계자는 "(갑을 관계를 기본적 인식으로 두고) 기업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단체가 조정 협의에 직접 나설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