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산업화 속에서 피어나… 인간의 존재를 묻다

      2022.08.04 17:24   수정 : 2022.08.04 17:24기사원문
전쟁은 삶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난 좌절에 대한 분노와 사라진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리고 형언하지 못할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들은 생에 대한 이해, 관계의 설정 그리고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견고했던 모든 것들의 허약함을 목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단단한 부모의 울타리, 맛있게 차려진 밥상,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 같던 둔중한 건물들이 맥없이 무너져 사라진 공간을 본다는 것 말이다.



추상은 그 모든 견고한 것들의 견고함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사실일까에 대한 질문은 비극적인 세계 전쟁 이전에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와 그에 따르지 못한 인간의 소외에서 시작됐다.
산업 발전으로 상품이 넘쳐나고 재화가 생산되고 풍요 속에서 행복함을 구가하던 이른바 '아름다운 시절(벨에포크)'에 이어 전쟁이 발발한 20세기 초반에 집중적으로 추상조각이 전개되었던 것도 이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질문의 가시화이다. 한국 또한 빠른 경제적 성장을 배경으로 하여 추상조각이 성장한 것은 물론이다.

세계 최초의 추상조각 중에는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브랑쿠시의 '새'가 있다. 루마니아 민담에 나오는 새 마이아스트라는 사람의 말도 하고 마음대로 변신할 줄 아는 존재라고 한다. 고난 속에 희망 같은 존재가 바로 '새'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조각 또한 김종영의 '새'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서울대에서 조각을 가르치며 잔혹한 6.25전쟁을 겪은 후 돌아온 수도 서울에서 열린 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방망이를 깎아 만든 '새'를 출품했다. 한국 최초의 추상조각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한국의 추상조각은 전쟁의 산물이다. 6.25전쟁기에 미술대학을 다닌 작가들에 의해 1950년대 중반 이후 추상조각은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젊은 날 새겨진 상처, 그 안에서 싹튼 실존 의식을 물질에 담아 쏟아냈다. 철판을 자르고 용접한 것도 전후 사회적 상황의 반영이었으며, 발언이었다. 급격히 산업사회로 진입하고 발전한 한국 사회에서 추상조각은 시각적 미의식에 매몰되지 않았다. 점, 선, 면과 같은 조형의 법칙 너머에서 한국의 추상조각은 사회에 존재하는 인간이 해석되는 방식을 담보한 경우가 많았다. 네온과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스틸, 철근과 같은 건축 부재와 산업재료가 인간의 마음의 상태를 상징하는 경우 또한 많았다. '새'에 사랑을 담은 여성조각가 김정숙은 남성 일변도의 추상미술 계보에서 기억될 일이다.

근대의 소산으로서 재현의 미술인 구상조각 상대편에 있는 추상조각의 관념은 새로움의 힘으로 다른 경향을 억압한 적이 없다.
조각된 새가 노자의 붕(鵬)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노자, 장자, 불교, 유교의 가치에서 생산된 정신세계는 한국의 전통사상에 뿌리를 둔 채 현대사회의 가치와 이념에 질문을 던진다. 그럼으로써 황폐한 초현대사회로 진입하는 사회에서 인간 존재를 돌아보라 충고하고, 답답한 도시에 숨구멍을 내는 역할을 자처한다.
현실의 재현이 아님으로써 가능한 추상조각만이 뚫어낼 수 있는 통로인 것이다.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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