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보다 화려하게' 조화 무시한 조각품, 최후는 철거

      2022.10.06 18:01   수정 : 2022.10.06 18:28기사원문
한국인을 만족시키는 공공조각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새로움에 대한 수용과 판단이 신속하며 취향의 진화가 돈속(頓速)하다. 해외기업들이 신제품, 신작에 대한 성패를 알아보고자 우리나라를 실험군으로 찾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빠른 사회발전 속에 관심의 촉을 세워 신신신야(信信信也-믿을 것을 믿고 의심할 것은 의심한다) 하는 국민성에서 비롯됨이 아닐까 한다. 공공조각의 경우 20세기 후반 연착륙 없이 수직 낙하하여 곳곳에 설치된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들은 서반에 비난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높은 작품가에 비해 작품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미술관 밖으로 나간 조각이 공공미술로서 대중과 서먹하게 대면한 맹아(萌芽)의 시기였고, 소통과 교감을 나눌 장이 부재한 탓이었다. 살피고 따져보아 앎, 공감, 관조의 즐거움이 샘솟는 것인데 이해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으면 성급한 직관이 앞서기도 한다. 이후 몇몇 한국 작가의 공공조각 역시 여론의 된서리를 맞았다.
물론 개중에는 빈약한 조형성이나 공공예술로서 숙고가 부족했던 선택으로 대중의 비난이 합당한 상황도 있으며 세평에 의해 손가락질을 당하는 작품은 수억짜리 작품일지라도 철거의 운명을 맞이하기도 한다.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한국 건물 앞 필수인 아무 조형물들이 갑자기 서로 배틀을 하는걸. 사람들은 처음에 놀랐다가 왜 싸우는지 모르지만 일단 자기네 회사 조형물들 응원하는 지난 7월에 누군가가 올린 이 트윗 하나가 '천하제일 조형물 무술대회'라는 온라인상의 배틀을 만드는 불씨가 되었다. 이 트윗에 호응한 전국 다양한 세대의 유저들이 본인 동네의 조형물이 더 강하다고 경쟁하듯이 공공조형물 사진을 잇달아 게재하며 전쟁에 불이 붙었다. 이 논란에는 공공조각이 지역의 자부심이 된다는 호응도 함의하지만 기괴한 조형물에 대한 비아냥도 혼재되어 있다. 긍정이든 냉소든 900여 건이 넘는 전국에 뜨거운 조형물 경쟁은 국민의 공공조각에 관한 관심과 인식을 보여준다. 심만의족(心滿意足)에도 불만족(不滿足)에도 침묵하지 않는 용광로 같은 세론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공공작품은 설치와 동시에 모루 위에 올려진다. 이 땅에서 조우하는 공공조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며 공간의 맥락성, 예술성, 대중성, 새로움이라는 허들을 넘어 행복을 선사해야 하는 존재여야 한다. 수많은 응원과 질타의 담금질 덕분에 공공미술작품은 하루하루 진일보(進一步)를 내딛고 있다.

한류 3.0 시대를 맞아 한국의 문화 콘텐츠들은 세계시장의 문을 활발히 두드리고 있다.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확고한 팬층을 확보한 한류의 초석 한국 드라마(K-Drama), 유럽과 북·남미를 사로잡은 K팝에 비해 한국 조각(K-Sculpture)은 세계화에 지극히 지둔(遲鈍)한 확산을 보인다. 정책적으로 가혹하다 할 만큼 까다로운 심의과정, 호불호가 명확한 한국인의 시론(時論)도 통과한 훌륭한 'K-Sculpture'가 세계인의 삶 속에 녹아들게 하려면 자기성찰이나 비판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 조각가들은 한국적 미술이라는 오래된 패러다임, 문화 순혈주의를 넘어 다문화주위를 융합하여 작품을 세계화하고 있다.
또한 주거단지나 큰 규모의 건축물, 전통적인 장소와 함께하는 조형물의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마르크 오제가 지칭하는 비장소(non-place)에 非조각적 형식으로 다가서는 새로운 노력도 하고 있다. 작가들의 투혼만으로는 부족한 이 시점에서 바르토메우 마리(전 국립현대미술관장)는 세계화에 있어 작가 '수출'만 말고 해외 관심을 한국으로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였다.
공·사 각계의 도움으로 한국에 설치된 'K-Sculpture'를 세계에 소개하여 문화 강국 한국을 알리고, 한국의 조각에 관한 관심을 집중시킬 호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하겠다.

김하림 조각가·아트플랫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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